2살배기 살린 ‘고공 원격진료’…다른 비행기탄 의사와 교신

  • 입력 2003년 2월 16일 18시 48분


1999년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범죄 스릴러 영화 ‘본 콜렉터’(주연 덴절 워싱턴)는 손가락을 제외한 전신이 마비된 법의학자가 연쇄살인범을 잡는다는 줄거리다. 범죄현장에서 경찰이 목격한 내용을 첨단 통신기기를 통해 법의학자에게 전달하면 그가 이를 토대로 판단한 뒤 다시 경찰에 지시를 내려 범인을 추적한다는 내용이다.

2, 3년 전 개봉된 미국 영화 가운데 손가락을 제외한 전신이 마비된 법 의학자가 연쇄살인범을 잡는다는 범죄 스릴러 영화가 있다. 범죄현장에서 경찰이 목격한 내용을 첨단 통신기기를 통해 그에게 전달하면 이를 토대로 판단한 뒤 그가 다시 경찰에 지시를 내려 범인을 추적하는 방식이다.

영화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여기겠지만 이와 유사한 일이 실제 일어나 화제가 되고 있다. 다만 흉악범을 잡는 게 아니라 위급 상황에 처했던 어린 생명을 구했다는 차이가 있다.

사건은 3일 오전 8시 태평양 상공을 비행 중이던 대한항공 KE002편 기내에서 발생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출발해 일본 도쿄로 향하던 비행기에서 생후 14개월 된 정리라양이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진 것.

승무원들과 탑승하고 있던 일본인 간호사 2명 등이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30여분 뒤 다시 열이 오르면서 정양은 의식을 잃었다.

이에 승무원들은 인근 지역을 비행 중이던 KE018편에 ‘응급 구조 요청’ 신호를 보냈다. 로스앤젤레스를 출발, 인천으로 향하던 이 비행기에는 다행히도 서울대 병원 흉부외과 김영태(金映泰) 교수가 타고 있었다.

김 교수는 조종실에서 통신용 헤드셋을 통해 환자의 상태를 전해들은 뒤 급성폐렴이라는 잠정 진단을 내리고 처방을 했다.

태평양 상공에서 두 항공기 사이에 원격진료가 실시된 것이다. KE002편이 나리타공항에 내릴 때까지 4시간30분 동안 정양은 두어 차례 더 고비를 겪었고 이때마다 원격진료는 효력을 발휘했다.

비행기가 나리타공항에 도착하자 미리 연락을 받고 출동해 대기하고 있던 앰뷸런스가 정양을 병원으로 옮겼다. 병명은 유아성 폐렴. 그러나 김 교수와 간호사 승객, 승무원 등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정양은 생명을 건졌으며 13일 무사히 퇴원했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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