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따고 귀국한 황모씨(37)는 사실상 6년째 사회생활에서 유리되어 있다. 97년부터 아버지가 경영하는 회사에 잠시 적(籍)을 두긴 했으나 도서관과 어학원을 오가며 공부를 하는 바람에 사실상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다. 유학을 다녀온 뒤에도 4개월 동안 외국계 은행에 취업했으나 ‘분위기가 생각 같지 않아’ 그만두고 지금은 다시 박사과정 유학을 준비하며 고교생 과외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그는 “과장, 심지어 부장으로 승진하는 동료들을 보면 마음이 급해진다”며 “하지만 더 배우면 학계든 업계든 기회가 생기지 않겠느냐”며 기대하고 있었다.
이처럼 공부에 대한 미련 또는 ‘환상’을 갖고 사회생활에서 떨어져 ‘나 홀로’ 공부만 하고 있는 30대가 늘고 있다. 이른바 ‘스터디(study) 룸펜’으로 불리는 이들은 취업에 장기간 실패하거나, 취업을 했더라도 적응하지 못한 채 ‘인생역전’을 위해 30대 초반에 다시 공부를 선택하고 있다. 이들의 도전분야도 대개 해외유학이나 각종 고시 합격 등 ‘홀로서기’에 도전하는 경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의 ‘현실도피성 공부’에 대해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사회에서 ‘중간관리자급 리더’가 되는 시기를 놓친 채 현실감각을 잃고 ‘공부=대박’이라는 환상만을 좇고 있다는 지적이다.
20대의 경우 취업의 기회가 많지만 30대는 나이 탓에 고용시장에서도 환영받지 못해 이 같은 ‘스터디 룸펜’이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30대 초중반에 대입에 도전하려는 이른바 ‘장수생(長修生)’들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H학원 재수생반의 경우 한 반 35명 중 5명꼴로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장수생이 차지하고 있다. 학원 관계자는 “장수생들은 주로 한의대와 의대, 디자인학과 등 개인능력이 중시되는 분야에 관심이 쏠려 있다”고 말했다.
모니터컨설팅그룹의 송기홍 부사장은 “특히 사회와 직장에서 가장 바쁘게 일해야 할 30대들이 공백상태에 놓인 것은 문제”라며 “뚜렷한 계획 없이 길게는 7∼8년을 ‘공부생활’로 전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이들은 결국 조직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 채용 대상에서도 제외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홍진표(洪鎭杓) 교수는 “(스터디 룸펜들은)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잘못된 가치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은 나이에 걸맞은 사회적 임무에 두려움을 느껴 언제나 20대 초중반의 마인드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심하면 일종의 퇴행성, 고착성 장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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