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엔 시커먼 재를 뒤집어쓰고 땀에 흥건히 젖은 소방대원들…. 사고 현장이면 어디든 달려가 몸을 던지는 그들의 투혼은 18일 참사에서도 어김없이 빛을 발했다.
사고 직후인 오전 10시경. 가장 먼저 중앙로 지하철역 화재현장에 도착한 대구 북부소방서의 구조대장 황윤찬 소방위(44)는 대원 6명과 함께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뜨거운 연기가 치솟는 지하철 역사로 내달렸다. 지하철역 구내는 정전으로 코앞을 분간할 수 없는 암흑 세계. 매캐한 유독가스로 숨조차 쉬기 힘들었지만 이들은 먼저 비명소리가 들리는 지하 1층 여자화장실로 달려갔다.
화장실 안에서 발견된 20대 여성 2명은 연기에 질식해 실신 직전이었다. 곧바로 이들을 들쳐업은 소방대원들은 수백개의 계단을 힘든 줄도 모르고 뛰어올랐다.
잠시 숨을 고를 여유도 없이 다시 현장. 황 소방위는 대원들과 함께 개찰구와 계단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는 승객들을 다시 끌고 나오자 턱까지 차오르는 숨으로 완전히 탈진했다.
그러나 곧 지하철 역사 지하 2층 기계실에 10여명의 직원이 고립돼 있다는 소식을 접한 이들은 본능적으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유독가스로 앞을 분간할 수가 없는 상황이어서 황 소방위는 대원들과 함께 입구에서부터 길을 잃지 않도록 길안내용 로프를 설치해가며 100m나 떨어져 있는 지하 2층 기계실에 도착했다.
기계실 안에 있던 직원 중 몇 명은 이미 질식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어 대원들은 산소호흡기를 실신자의 입에 물려준 뒤 로프를 잡고 10명을 구조해 나왔다. 조금만 늦었어도 모두 목숨을 건지기 힘든 상황. 그러나 이들은 20여명의 생명을 구했다는 기쁨보다 기계실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직원 2명이 결국 숨졌다는 소식에 가족을 잃은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이들은 슬픔을 뒤로 한 채 사고현장 수습에 나서 다음날 오전 2시가 돼서야 겨우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오전 10시10분경 2차로 도착한 달서소방서 구조대원 7명의 활약도 돋보였다. 이 소방서 구조대 전갑중 소방장(48)은 지하 2층 계단에 쓰러져 있던 40대 여성을 발견하고 ‘이대로는 구조해도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산소호흡기를 이 여성에게 물렸다. 곧바로 유독가스가 자신의 코로 밀려들어와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산소마스크를 실신 여성과 교대로 착용하며 구사일생으로 화재현장을 빠져나와 구급차에 옮겨 실었다.
이날 화재 현장에는 소방관뿐 아니라 군장병 의사 간호사 경찰 자원봉사자 등 3200여명이 나와 인명 구조활동을 펼쳤다.중앙로 일대는 지원나온 구급차와 소방차 지원차 200여대로 가득 찼다. 생존자에 대한 구조작업은 대부분 화재발생 후 30분 이내에 이뤄졌으며 소방관들의 출동이 조금만 늦었더라도 사망자는 훨씬 늘어날 뻔했다. 대구=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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