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방화/이모저모]"엄마, 숨 못쉬겠어" "얘야 정신차려"

  • 입력 2003년 2월 18일 18시 53분


대구지하철 참사의 희생자들은 수십m 지하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뜨거운 불길과 유독 가스가 덮쳐오는 극한상황을 맞고는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9·11 테러’ 당시 희생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상에 있는 가족들과 휴대전화를 통해 애절한 작별인사를 나눴다.

“엄마, 지하철에 불이 났어.”

“영아야, 정신 차려야 돼.”

“엄마, 숨을 못 쉬겠어.”

“영아, 영아, 영아야….”

“헉헉, 숨이 차서 더 이상 통화를 못하겠어. 엄마, 그만 전화해.”

“영아야, 힘을 내. 제발 엄마 얼굴을 떠올려 봐.”

“어…엄마, 사…랑해….”

18일 오전 장계순씨(44)가 딸 이선영양(20·영진전문대)과 나눈 짤막한 휴대전화 통화내용이다.

이날 오전 10시쯤 집을 나선 이양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도 장씨는 처음에는 명랑한 성격의 딸이 장난을 하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딸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깜짝 놀란 장씨는 수시로 끊기는 딸의 휴대전화에 몇 번씩 전화를 걸어 힘을 북돋워 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엄마 사랑해”라는 힘없는 목소리를 끝으로 전화는 끊겨버렸다. 장씨는 바로 집을 뛰쳐나와 화재가 난 지하철역으로 내달았다. 사고 현장을 헤매던 장씨는 만나는 사람들을 붙들고 “우리 딸 좀 찾아줘요” “반드시 살아있을 거예요”라는 말을 되뇌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또 이미영양(19·경북 왜관읍)은 아버지에게 휴대전화로 “구해주세요…문이 안 열려요”라며 구조를 요청했다. 잠시 후 비명과 고함 소리, 울음소리가 뒤범벅이 되어 들려오던 딸의 전화는 꺼져 버렸다. 이후 이양 역시 연락이 끊겨 온 가족들이 화재 현장과 대구시내 병원을 돌아다니며 애타게 찾고 있다.

이 밖에도 대구지하철 화재 당시 사고현장에서 휴대전화로 가족들에게 긴박한 순간을 전한 뒤 아직까지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사연이 잇따르고 있다.

18일 오전 10시경 정인호씨(51·대구시 동구 방촌동)에게도 딸 미희양(21)이 긴박한 목소리로 “불이 났는데 문이 안 열려 못 나간다”는 얘기를 남긴 채 연락이 끊겼다.

곧바로 현장에 달려간 정씨는 “딸이 대학편입을 위해 시내에 있는 영어학원을 다녔는데 사고 지하철에 탄 것 같다”고 오열하며 한가닥 희망을 안고 병원을 헤맸다. 같은 시각 박남희씨(44·대구)도 고교 3년생 딸로부터 “엄마 살려줘”라는 다급한 전화를 받고 무작정 현장으로 달려나갔다. 박씨는 “고3인 딸이 시내에 있는 피아노학원을 다녔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다”면서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라며 넋을 잃었다.

또 초등학교 6년생인 조효정양(12)은 친구와 시내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 뒤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지하철사고가 나 약속시간을 못 맞출 것 같다”고 전한 뒤 지금까지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대구=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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