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방화]장모-아내-아들 잃은 서원우씨

  • 입력 2003년 2월 19일 19시 18분


대구 지하철 방화참사로 일가족 3대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사실이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서원우씨(33·대구 동구 용계동)의 아내 강은숙씨(27)와 아들 민수군(2), 장모 박춘지씨(58·대구 동구 신천동)가 모두 이번 사고의 희생자가 됐다.

사고가 발생한 18일은 서씨의 처제 정숙씨(25)의 계명대 졸업식 날이자 아들 민수군의 생일이었다. 강씨는 이날 정숙씨의 졸업식에 참석하고 민수군의 생일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직장에 휴가를 내고 어머니, 동생과 만나 나들이에 나섰다. 아들 민수군도 신이 나 동행했다.

졸업과 생일 축하 분위기로 들떠 있던 분위기는 전동차가 중앙로역에 도착한 순간부터 악몽으로 바뀌었다. 정숙씨는 겨우 목숨을 건졌으나 나머지 일가족 3대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돼 배성병원 영안실에 안치됐다.

3년 전 직장 동료인 강씨와 결혼, 행복한 가정을 꾸려오다 이번 참사로 아내와 아들, 장모를 한꺼번에 잃은 서씨는 이 같은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표정으로 아내와 아들의 사진을 가슴에 안고 한숨과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장모 박씨의 빈소도 사고 소식을 들은 친척과 지인들이 찾아오면서 울음바다가 됐다.

서씨는 “직장이 경북 안동에 있어 평소 아들과 함께 놀아주지도 못했다”며 “처제 대학 졸업에, 아들 생일이 겹친 좋은 날이었는데 하늘도 무심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시신 DNA분석 최소 3주▼

19일 현재까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은 전동차 내에서 발견된 70여구와 각 병원 영안실에 안치된 시신 가운데 유가족이 나타나지 않은 10여구 등 모두 80여구에 이른다. 이들 시신의 신원을 밝혀내기 위해 19일 경북대 법의학팀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경찰 전문가들로 팀이 구성됐다. 대구지하철 화재사건 대책본부는 전동차 내 시신들이 화재로 심하게 훼손된 점을 감안해 18일 전동차를 달서구 진천동의 월배차량기지로 옮긴 뒤 조심스럽게 시신 수습 작업에 나섰다.

국과수 정낙은 법의관은 19일 오전 사고차량 내부를 조사한 뒤 실종자 유가족 400여명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대로 유골에서 유전자(DNA) 시료를 채취, 감식 작업에 나서겠다”며 “실종자의 유가족들도 신원확인에 필요한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해달라”고 당부했다.

경찰 관계자는 시신 대부분이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여서 최종적으로 신원을 확인하는 데는 최소 3주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신원 확인팀은 시신의 유전자와 실종자 가족들의 유전자를 정밀 대조하기 위해 조만간 실종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혈액 채취 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또 시신의 훼손 상태가 심한 경우 개구리소년 신원확인 작업에도 동원했던 두개골을 토대로 한 안면복원술과 실종자들의 치과 진료기록을 토대로 한 법치의학적 방법 등도 모두 동원할 계획이다.

▼사망자 명단(19일 추가확인)▼

▽대구기독병원

△이근우(72·동구 신암4동)

▽동산병원

△황태연(22·울산)

▽허병원

△신원미상 1명

▽경북대병원

△김인옥(30·여·동구 검사동)

▽곽병원

△원경미(30·여·동구 방촌동)

▽논공카톨릭병원

△김은주(57·여·동구 신암5동)

▽동산병원

△박말연(50·여·동구 검사동)

▽영남대병원

△이선영(20·여·경북 상주시 맹림동)

▽치매노인병원

△조용운(52·만촌1동)

▽파티마병원

△김순재(51·여·북구 산격동)

△김경옥(62·여)

▽효심병원

△최화준(34·수성구 지산동)

▽배성병원

△김옥순(67·여·달서구 진천동)

▼지하철 사고 이렇게 대처하라▼

황근출씨(50·여·대구 동구 신천동)는 18일 대구 중앙로에 있는 자신의 상점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가다 사고를 당했다. 황씨는 출입문 바로 앞에 서 있었기 때문에 문이 열리자마자 열차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연기가 자욱해 이미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어요. 간신히 벽을 더듬으며 계단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방향을 잘못 잡아 벽이 막다른 곳에서 끝났어요.”

그 순간 황씨는 “이제 죽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어둠 속에서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넘어지는 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황씨는 침착하게 지나온 벽을 더듬으며 다시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유독가스를 많이 마셔 가슴이 따갑고 답답해 오면서 정신도 혼미해졌지만 그때마다 남편과 세 딸의 얼굴을 떠올리며 정신을 차렸다.

황씨는 “겨우 계단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찾아 더듬으며 움직일 때의 몇 분은 마치 억겁의 시간과 같았다”며 “계단을 올라와 개찰구쯤에 이르렀을 때 소방대원을 만났고 그들의 부축을 받아 밖으로 나와 맑은 공기를 마셨을 때 ‘이제야 살았다’는 실감이 났다”고 말했다.

황씨의 경우는 최초 도피가 빨랐던 데다 당황하지 않아 위기를 모면한 경우.

지하철역과 같은 밀폐된 공간의 화재는 일반 화재에 비해 2배 이상 위험하고, 화재로 생긴 매연과 열기가 사람이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속도보다 더 빨라 피해가 대형화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지상으로 향한 통로가 ‘굴뚝’ 역할을 하면서 유독가스가 사람들의 피신방향과 함께 움직인다고 지적했다. 이번 참사에서 계단을 통해 위로 대피하던 승객들이 상당수 질식해 숨진 것도 이 때문이다.

학계의 실험결과에 따르면 화재로 발생한 연기의 확산 속도는 수직방향으로 초당 3∼4m, 수평방향으로는 초당 1∼2m. 이는 성인이 빠르게 계단을 뛰어올라가는 속도를 앞지르는 것이다.

이번 참사에서는 특히 순간적으로 3메가와트의 열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1킬로와트짜리 난로 3000개를 한꺼번에 켠 것과 같은 초고열이다.

지하철 화재로 인한 매연은 대류현상에 의해 천장과 벽을 따라 흐르며 ‘나갈 곳’을 찾기 때문에 우선 몸을 1.5m이하로 낮추며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부득이 대피가 어려울 경우는 되도록 바닥에 바짝 엎드려 상황을 살피는 게 필요하다는 것. 이때 호흡은 코로 짧게 해야 한다. 만일 입으로 숨을 쉬었다가는 고열의 농연을 들이마시며 화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원대 손봉세(孫鳳世·소방시스템학과) 교수는 “지하 공간에서의 화재는 야외의 화재에 비해 배 이상 위험이 커진다”며 “천장을 향해 올라간 유독가스가 나갈 곳을 찾지 못할 경우 바닥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신속하게 판단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지하철 사고 발생 대처요령▼

●화재시

―연결통로 출입문 왼쪽 위에 설치된 비상인터폰을 통해 기관사에게 알린다

―연결통로 출입문 아래에 비치된 소화기를 꺼내 불끄기 시도한다

―손수건이나 겉옷 등으로 코와 입을 막고 전동차 출입문을 통해 직원의 안내에 따라 대피한다

●생화학무기 살포시

―코와 입을 막고 우선 앞 뒤칸의 차량으로 피한다

―비상인터폰으로 기관사에게 알리고 전동차가 멈출 때까지 기다린다

―전동차 출입문이 열리지 않으면 출입구 옆면 상단의 비상스위치를 눌러 문을 열고 빠져나간다

대구=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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