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과학학의 선구자중 한 명인 장회익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65)가 이달말 은퇴한다. 그러나 그에게 은퇴는 끝이 아니다. 장 교수는 다음달 3일 경남 함양군 지리산 자락에서 문을 여는 ‘녹색대학’의 총장을 맡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녹색대학은 장 교수와 함께 허병섭 푸른꿈고교 운영위원장, 이병철 전국귀농운동본부장 등이 함께 세운 국내 첫 대안 대학이다. 학부 과정에 40명, 대학원 과정에 100여명이 입학했다. 학생들은 모두 기숙사에서 살며 함께 농사지어 자급자족의 삶에 도전한다.
이곳에 개설된 학과만 봐도 자연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학부에 녹색문화학, 녹색살림학, 생명농업학, 생태건축학, 풍수풍류학 전공이 있고, 대학원에는 녹색교육학, 생태건축학, 자연의학과가 있다. 장 교수는 이곳에서 불릴 자신의 이름도 ‘오솔길’이라고 지었다. 장 교수는 괜찮은 오솔길만 보이면 만사 제쳐놓고 그 길을 거닌다고 한다.
그러나 장 교수는 녹색대학이 무조건 과학을 반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현대 과학은 자연에 대한 이해의 폭을 크게 넓혀 줬다. 조선시대에는 농사를 지으면서 미생물에 대해 알기나 했겠나. 당시 자연친화적으로 농사를 지었지만 보릿고개로 고생했다. 그러나 지금은 발전한 과학을 잘 이용하면 자연을 살리면서도 생산량을 높일 수 있다.”
장 교수가 신입생들에게 강조하는 것도 ‘과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다. 이런 생각은 그가 직접 신입생들에게 가르칠 ‘물질, 생명, 인간’이라는 과목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기존 과학은 모든 것을 떼어놨지만 녹색대학의 과학은 전체를 하나로 본다”고 말했다. 물질의 기본 원리에서 생명 현상이 어떻게 나오고, 인간의 정신과 행동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물리학, 화학,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을 한꺼번에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신입생 중에는 과학에 아주 부정적인 사람도 있지만 현대 과학의 최정상인 상대성이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은 녹색대학을 졸업하지 못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장 교수는 이런 거창한 작업을 교수 혼자서 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녹색대학이 지향하는 것도 ‘열린 대학’이다. 학생과 교수가 함께 토의하며 무엇을 어떻게 배울지 정할 계획이다. 거창한 ‘실험실 실험’은 할 수 없겠지만 대신 생활속 실험은 더 많이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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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체물리이론을 전공한 장 교수는 대학 시절부터 ‘외도’를 시작했다. 상대성이론이나 양자 역학을 배우면 수식은 알겠는데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그는 복잡한 이론의 근본 의미를 찾기 위해 철학 과목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서울대 교수가 된 뒤 장 교수의 갈증은 더욱 심해졌고, 서서히 본업을 떠나 과학철학에 열중하게 됐다.
과학철학자로서 그가 세운 사상 중 하나가 ‘온생명’이다. 온생명은 생명의 단위를 개체에서 ‘외부의 도움 없이 생명을 유지하는 범위’로 확대시킨 것이다. 온생명 사상에 따르면 태양과 지구를 연결한 큰 덩어리가 하나의 생명이다. 장 교수의 과학철학에 대해 주류 시각이 아니라는 비판도 있다. 장 교수는 “물리학자의 시각으로 생명을 바라봐 온생명 사상을 만든 것처럼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할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녹색대학이 추구하는 대안 문명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자연을 훼손하는 현재의 문명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대안 문명이 성공하지 못하면 인류에게 미래는 없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 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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