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의 꽃시장인 양재동 화훼공판장이 요즘 분주하다. 졸업과 입학철인 데다 서둘러 봄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기 때문.
이곳은 생화 도매장, 화환 꽃바구니 매장, 분화(盆花) 난 매장, 초화(草花) 매장 등으로 나뉘어 500여개 업소가 성업 중이다. 하루 평균 2억원 안팎(약 2000상자)의 경매도 이뤄진다.
분화 난 매장 앞에선 유치원생 3명이 통나무를 어깨에 메고 칙칙폭폭하며 기차놀이를 하고 있었다. 봄이 되면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이 소풍을 많이 온다고 한다.
분화 난 매장에 들어서자 나비 모양의 흰색 분홍색 호접란(胡蝶蘭)이 화사하게 반긴다.
이곳을 처음 찾았다는 김성연씨(27·여)는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것 같다”며 흥분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주인은 “호접란은 화사한 색깔과 모양 덕분에 받는 사람의 기분을 가장 좋게 하는 꽃”이라고 웃으며 화답했다.
그 옆으로 철쭉 영산홍 베고니아 등도 즐비하다.
서서히 꽃 향기에 취해가는 순간, 어딘가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5000원만 빼 줘.”
“빼긴 뭘 빼.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해요.”
“내가 여기 한두 번 오나.”
“에이, 오늘 운세가 왜 이런지.”
5만원짜리 난을 놓고 벌어진 흥정이었다. 흥정엔 화사한 꽃집도 예외일 수 없는 법.
매장 한 쪽에선 50대 남성이 배달용 꽃 장식천에 열심히 붓글씨를 쓰고 있었다. 이날 있었던 장관 임명 소식이 생각나 “혹 신임 장관 축하 꽃 배달 의뢰는 없었는지”하고 물었다.
“글쎄요. 요즘 공무원들 꽃 받지 않으려고 해요. 금지된 모양이던데요. 화훼 농가도 먹고살아야 하는데. 봉투보다 꽃이 낫지 않나요. 근데 농림부 장관은 받는다고 하더군요. 화훼 농가한테 혼날지 모르니까.”
구경하던 한 모녀가 깔깔 웃었다. 갓 스물 되었을까, 딸의 손에 들려 있는 시집 한 권.
‘짤깍, 잠겨 있던 책상 서랍이 열리고…/겨우내 자고 있던 기억의 밀실에/불이 켜진다’(강인한의 ‘봄의 열쇠’ 중).
하나둘 터뜨리는 꽃망울이 겨우내 잠자던 기억을 건드린다. 알전구에 불이 들어오듯 양재동 화훼공판장의 봄은 그렇게 오고 있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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