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경 법무부의 인사지침을 가장 먼저 통보받은 대검은 이내 충격과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김각영(金珏泳) 검찰총장은 집무실로 몰려온 검사장급 이상 검찰간부들과 함께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일부 간부들은 “이럴 수 있느냐”며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검사장들은 “검사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인사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느냐”고 총장에게 건의했고, 김 총장은 “내가 (법무부에) 가서 다시 알아볼 테니 기다려 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사장들은 이어 총장실 옆 차장실에서 대책회의를 계속해 대검은 오후 내내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회의장 문틈으로 “검찰을 이렇게 흔들어도 되는 것이냐”는 고성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회의가 끝난 뒤 한 검사장은 “인사문제로 검찰이 패닉(공황) 상태에 빠졌다.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지검에서는 오후 4시반경 24개부의 부장검사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1∼3차장검사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를 가졌다. 회의를 마치고 나온 부장검사들은 한결같이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한 부장검사는 굳은 표정으로 “걱정스러울 뿐입니다”라고 짧게 말했다.
특히 서울지검 2차장 산하의 형사부 소년부 조사부 등 12개부 부장검사들은 차장 주재 회의가 끝난 뒤 1시간 동안 한상대(韓相大) 형사1부장 주재로 별도의 회의를 갖고 또다시 격론을 벌였다.
서울지검의 평검사들도 법무부 인사안을 전해 듣고 부별로 삼삼오오 모여 파격 인사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앞으로의 파장 등을 논의했다. 그러나 일부 간부는 자신들의 행동이 자칫 개혁에 대한 집단 반발로 비치는 것을 우려하며 신중한 처신을 강조하기도 했다. 서울지검 양재택(梁在澤) 총무부장은 “검찰이 집단으로 반발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검찰 간부들은 또 입장 표명을 어떻게 하느냐를 놓고 고민하는 모습도 보였다. 집단 항명이나 성명서 발표 등은 ‘집단 이기주의’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기도 했다.
한편 대검 간부들을 비롯한 서울지검 부장, 부부장 검사들은 5, 6명씩 짝을 지어 이날 밤늦게까지 서초동 곳곳에서 모임을 갖고 대응방안을 숙의했다. 일부 검사들은 통음하며 분을 삭이지 못하기도 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청와대, 검찰 장악위한 흔들기”
검찰 고위간부에 대한 법무부의 ‘파격(破格)’을 넘어 ‘과격(過激)’해 보이는 인사안에 검찰 내부는 벌집을 쑤신 듯 크게 술렁거렸다.
대검과 서울지검은 6일 오후 즉각 부장단 회의를 각각 열어 대책을 논의했으며, 김각영(金珏泳) 검찰총장은 곧바로 정부과천청사로 달려가 강금실(康錦實) 법무부 장관에게 검찰의 심상찮은 분위기를 전달했다.
대검의 한 고위 간부는 “이 같은 반발로 미뤄볼 때 ‘최악의 검란(檢亂)’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검찰 내부의 충격과 동요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일부 간부들은 성명서 발표, 집단 사표, 연판장 서명 등 극단적인 방법도 불사할 태세다.
수사도 아닌 인사문제를 놓고 검찰이 이처럼 조직적으로 반발 움직임을 보인 것은 법무부 인사안이 당초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충격적인 수준이었기 때문.
법무부가 통보한 인사안에는 이날 사법시험 12회 및 13회 고검장들의 사퇴로 빈 4자리의 고검장 자리에 14회 1명(J 지검장), 15회 1명(K 대검 부장), 16회 2명(L 지검장, Y 검사장)을 승진시키기로 돼 있었다.
이 경우 예전 관행대로라면 14회 4명, 15회 8명이 옷을 벗어야 할 처지에 놓인다. 정상명(鄭相明) 차관 내정자가 사시 17회인 점을 감안할 때 16회까지 ‘청산대상’이라면 검찰을 떠나야 할 간부는 무려 17명으로 늘어난다.
검찰 내부에서는 검사장 승진도 사시 22회, 심지어 23회까지 내려간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을 정도다. 현재 검사장급 이상 간부가 사시 18회까지인 점으로 미뤄볼 때 17, 18회 검사장 가운데서도 일부가 옷을 벗을 수 있다는 말이다.
검찰은 이번 인사안이 강 장관의 ‘작품’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평소 안정 위주로 검찰 간부 인사를 단행하겠다고 공언해 온 데다 김 총장과 단 한 번의 협의도 없이 인사안이 대검에 ‘훌쩍 날아왔기’ 때문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번 인사안은 청와대와 민변측 인사가 주도한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검의 한 간부는 “김 총장이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사표를 낼 각오로 사태에 임하고 있다”고 전해 김 총장도 ‘배수진’을 치고 있음을 강력 시사했다.
그러나 김 총장은 이날 강 장관을 만나고 나온 직후 간부들에게 “누구는 반(反)개혁적 인사로 청산대상이고 누구는 개혁적 인사여서 수용한다면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느냐”며 “억지로 쫓아내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7일 강 장관과 다시 만날 예정이다. 그는 “내일 강 장관과 잘 협의가 될 것으로 본다”며 애써 낙관론을 피력했다.
그러나 대검과 서울지검의 간부들은 “이번 검찰 인사안은 인사를 통해 검찰을 장악하려는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의도가 드러난 것”이라며 “노 정권측의 이 같은 의도가 바뀌지 않으면 내부의 동요가 쉽게 가라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간부들은 이번 인사안 파문이 앞으로 걷잡을 수 없는 ‘최악의 검란’으로 번질 수 있음을 우려하기도 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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