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경북 영주시 순흥면 소수서원(紹修書院·사적 55호)을 찾은 한양대 건축공학과 4학년 최우순(崔禹順·27·서울 종로구 숭인동)씨는 소수서원을 둘러보고 ‘건축’에 대한 안목이 새로워 졌다.
건물을 튼실하게 잘 짓는 학문쯤으로 알았던 건축공학에도 사람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스며들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최씨는 “건축공학도로서 배울 점이 많았다”며 “천지인(天地人)이 조화되고 자연친화적인 건축물이어야 역사에도 남을 수 있다는 것은 대학에서 얻기 어려운 소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유교문화의 뿌리인 소수서원이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해 전국에서 소수서원을 찾은 사람은 40만명 가량. 수학여행이나 현장체험 학습을 오는 청소년이 많지만 한국문화를 엿보기 위해 일부러 찾는 외국인도 꽤 있다.
소수서원은 조선 중종 37년(1542년) 당시 풍기군수 주세붕이 우리나라 성리학의 선구자였던 안향 선생이 공부하던 이 곳에 백운동서원을 세운데서 비롯됐다.
이후 퇴계 이황 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임시 ‘紹修書院’이라는 임금(명종)의 현판을 받아 우리나라 첫 사액서원이 됐다. 소수서원을 통해 배출된 학자는 4000여명. 미국 하버드대학보다 93년 앞서는 사립대학 역할을 한 셈이다.
소수서원의 건축물 가운데 스승의 숙소인 직방재(直方齋)와 학생 기숙사인 학구재(學求齋)는 서원건축의 ‘인문학적’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직방재는 오른쪽에, 학구재는 왼쪽에 있다.
최씨는 “두 건물을 나란히 짓지 않고 두칸 물려 짓고 학구재의 방 높이는 직방재보다 낮춘 것은 스승에 대한 지극한 존경이라는 설명을 듣고 감탄했다”며 “건축물이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서원을 찾는 사람들은 ‘소수서원 지킴이’ 박석홍(朴錫泓·50) 학예연구원의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서원에 담긴 깊은 뜻을 느낀다. 그는 “소수서원은 그냥 오래된 유적지가 아니라 지금도 한국인의 삶 속에 녹아있는 살아있는 전통”이라고 말했다. 4월에는 주한 외교사절단 60명이 소수서원을 찾아 한국문화를 배울 예정.
“이 곳을 찾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피상적으로 둘러보고 돌아가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미리 조금 공부를 해서 방문한다면 우리 문화의 뿌리를 훨씬 풍부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박씨의 아쉬움이다.
영주=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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