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방화 참사(2월 18일)가 발생한 지 한 달째 접어들고 있으나 유족들은 깊은 충격과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시민들 가슴에도 ‘짙은 앙금’이 남아 있다.
특히 유가족과 시민들은 이번 사고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 갖가지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정부 여당은 물론 한나라당과 대구시 등 행정 당국 및 정치권 전반에 대해 총체적인 불신과 거부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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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물지 않는 상처=실종자 가족 100여명은 중앙로역 지하 2층과 시민회관의 합동분향소 유족대기실에서 꽃샘 추위에 떨며 20여일째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다.
대학생 아들(21)과 딸(23)을 동시에 잃은 슬픔을 억누르며 ‘시신이나 찾자’는 심정으로 중앙로역 등에서 새우잠을 자던 정경숙씨(48·경북 포항시 북구 죽도2동)는 13일 탈진상태에 빠져 병원에 입원했다. 정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보다 더 괴로워하는 남편을 위로하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파티마병원에 입원중인 부상자 김은주씨(25·여)는 사고 당시 폐속으로 들어간 유독가스와 검은 재를 뽑아내는 치료를 20여일째 받고 있으며 대구 동산의료원에 입원 치료중인 최우경씨(57·여)도 기도에 심한 화상을 입어 수시로 검은 가래를 뱉어내고 있다.
현재 사고부상자 146명중 88명은 아직도 병원에 입원해 있고 퇴원한 58명도 극심한 정신적 후유증과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얼어붙은 지역 경제=대구 A섬유 대표 김모씨(50)는 “대선 결과로 위기감에 휩싸인 지역 사회에 지하철 방화참사까지 겹쳐 대구 경제가 최악의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 가족과 연인들의 만남의 공간인 대구 중앙로역 일대는 초저녁이면 인적이 끊기는 ‘기피지역’으로 변했다.
중앙로역 부근 중앙지하상가 S시계점 주인 김태성씨(30)는 “참사 발생 이후 시민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매상이 90%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이번 참사와 관련, 지역 경제계와 현대경제연구원은 유무형 피해를 감안할 경우 총 7000여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묘한 민심의 변화=실종자 유가족들은 특히 “시장은 물론 지역의 국회의원과 시의원들이 모두 한나라당 소속으로 평소 상호 견제와 감시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재해 예방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부실해져 대형 참사가 발생했으며 이후 사고 수습 과정도 엉망으로 진행됐다”고 입을 모았다.
영남대 K교수(46)는 “총선과 대선 때 대구 시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한나라당이 참사 발생 초기 때 자원봉사단 파견과 합동분향소에 민심수렴 창구를 개설한 것 말고는 당 차원의 수습책 마련을 소홀히 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지 않아 지역민들이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며 밑바닥 민심의 기류를 전했다.
▽이제는 일상으로=이번 참사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관련 책임자를 신속하게 처벌, 지역 사회가 참사의 그늘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계명대 신일희(申一熙) 총장은 ”이번 참사로 ’대구가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는 좀 과장된 면이 있다”면서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대구시민들이 이번에도 잠재력을 유감없이 발휘, 일상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정용균기자 cavat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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