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기라곤 별로 없어 보이는 삭막한 땅 어디에서 저수지들을 채우는 물이 나오는 걸까. 물은 보이지 않는, 저 지하 깊은 곳에서 끌어올려지고 있다. 메마른 흙과 자갈 속 수십 수백m 아래에서 텍사스주 주민의 생명수가 길어 올려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텍사스주 내에 600만t 이상의 저수용량을 갖춘 대형 저수지는 211개. 1900년까지 단 한 개였던 저수지는 1950년에 62개로, 80년까지 184개로 늘어났다.
그 속도는 텍사스주의 인구와 경제력이 불어난 것과 일치한다. 텍사스주의 성장은 바로 ‘숨은 물’을 찾아내려는 이런 노력의 결과로 이뤄진 셈이다.
텍사스주 수자원개발위원회(TWDB) 선임책임자인 케빈 워드는 “텍사스주의 발전은 새로운 수자원의 개발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비단 텍사스주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춰진 물을 얼마나 많이, 효율적으로 찾아내 활용하느냐가 수자원 개발의 요체가 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물줄기를 찾아서=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남쪽 오렌지카운티 수자원국(OCWD). ‘물 공장(Water Factory)’이라고 명명된 이곳 실험실의 중요 프로젝트 중 하나는 땅 속에 물을 투입하는 작업이다.
OCWD가 카운티 안을 흐르는 샌타애나 강변에 조성한 9㎞ 정도 길이의 습지가 그 현장이다. ‘강변 여과’라고 불리는 이 방식은 하천이나 호수 옆에 물이 스며드는 통로를 설치해 강 주변 땅 밑을 습지로 만드는 것이다.
OCWD는 샌타애나 강변을 따라 12개의 연못을 만들어 물을 지하에 침투시키는 통로로 이용하고 있다. 연못 바닥은 물이 스며들기 쉽도록 불도저 등을 이용해 물구멍을 뚫었다. 이를테면 물을 ‘주사’하는 셈이다.
물이 지하 깊숙한 곳까지 완전히 침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7년. 이렇게 저장된 물은 오렌지카운티 주민을 위한 ‘물 저금통’이 되는 것이다.
OCWD의 홍보 담당자 제니 글래서는 “지하로 스며든 물은 모래와 자갈을 통과하면서 수질도 좋아지기 때문에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방식은 하천수 중심으로 수자원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한국에서 지하수는 아직 미답의 영역.
연간 지하수 가용량 132억t 가운데 실제 사용되는 것은 약 30억t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다. 그만큼 지하수 활용이 미흡하다는 얘기지만 역으로 장래 물 부족사태를 극복할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낳는다.
그 가능성을 재 보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미 이뤄지고 있다. 경남 창원시는 낙동강에서 ‘강변 여과’ 방식으로 상당량의 물을 확보하고 있다.
하루 6만t으로 전체 사용량의 10%에도 못 미치는 양이지만 창원의 성공 사례를 배우려는 다른 지역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무한재라는 함정=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숨은 물’이라고 해서 ‘무한재’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마르지 않는 샘’이라는 환상이 초래한 결과를 일본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일본은 지난 수십년간 지하수를 개발해 이 분야의 선진국으로 불린다. 그러나 마구 펌프질을 해대는 바람에 수질이 나빠지고 땅이 꺼지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미국의 최대 지하수층인 오갈라라 대수층의 고갈도 같은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네브래스카에서 캔자스주 텍사스주로 이어지는 이 지하수층의 넓이는 27만㎢. 그러나 15만개의 관정을 통해 물을 퍼 쓰는 동안 물이 마르기 시작했다. 농부들이 말라 가는 땅을 포기하고 떠나기에 이르러서야 정부는 사태의 심각함을 깨달았다.
텍사스주가 저수지 추가 개발을 자제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현명한 물 사용(Be Water Smart)’이라는 TWDB의 기치가 말해주듯 텍사스주는 지하수 개발에 철저한 규제를 하고 나섰다. 2000년 현재 211개인 대형 저수지의 신규 조성은 앞으로 50년 간 10개 이내로 묶을 방침이다.
주 정부는 지하수위를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관찰하고 있다. 자율적으로 이뤄져 온 우물 파기 등에 대해서도 몇 년 전부터 까다롭게 간섭하고 있다. 오스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국 교포 심송씨는 “엄격한 물 규제 조항을 맞추느라 식당 재건축비가 4배 더 들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수돗물을 지표수가 아닌 지하수로 공급하는 독일도 지하수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한편 철저히 관리한다.
독일 내 물 관련 연구소 중 가장 큰 베를린 남부 마리엔펠데에 있는 독일연방환경청 연구소. 이곳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지하수를 덜 쓰면서 효율을 높일 것이냐’에 맞춰져 있다. 7000t 규모의 인공연못을 포함해 5290㎡ 면적의 강변여과 설비 등을 갖추고 각종 시뮬레이션 실험이 이뤄진다.
하르트무트 바르텔 연구원은 “이곳에서 정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검증된 결과가 지하수 관리 정책에 반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하수 선진국’인 이들 나라의 경험은 지하수라는 ‘보물’을 다루는 법에 대해 많은 걸 시사한다.
오스틴·로스앤젤레스=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베를린=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텍사스大 메이드먼트 교수 “각국 물정보 공유 문제 해결 지름길”▼
물 관련 연구소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미국 텍사스주립대(오스틴) 수자원 연구센터. 세계에서 연구자들이 몰려들고 있는 물 연구의 메카로 불리는 곳이다.
81년부터 이곳의 소장을 맡고 있는 데이비드 메이드먼트 교수(사진)는 30년간 물 문제를 탐구해 왔다. 그가 내놓는 책자나 보고서들은 미국은 물론 각 국 수자원 관련 기관의 정책 결정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간 물을 다뤄 온 그도 “솔직히 아직도 나는 물에 대해 잘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지금 우리가 물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얼마나 필요한지, 얼마나 부족한지, 또 얼마나 더 개발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는 “그만큼 물에 관한 한 인류의 지식은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메이드먼트 교수는 “1960년대부터 미국과 옛 소련은 우주 개발 경쟁에 들어가 우주에 대해서는 상당한 지식을 축적했다”면서 “그러나 정작 지구의 물 사정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그는 “물이 석유처럼 귀한 대접을 받았다면 그랬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무엇보다 물에 관한 정보의 활발한 유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소가 지리정보시스템(GIS)을 이용한 각종 소프트웨어들을 개발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정보의 ‘장벽’를 극복하려는 작업이다.
“미국만 해도 주마다 물 사정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런 이기심이 물 문제 해결의 가장 큰 적이 될 것입니다.”오스틴=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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