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여론광장/화해-조정통한 분쟁해결은 세계적 흐름

  • 입력 2003년 3월 25일 21시 45분


필자가 법관을 그만둔 뒤 인천에서 1년 가까이 변호사로 일하면서 재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편견에 종종 당혹감을 느끼곤 한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재판은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필요악이며 재판에 연루된 사실을 상당히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법원은 시비나 선악을 명쾌하게 가르는 판결기관으로서 만족하지 않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해 당사자의 타협을 유도하는 중재자로서의 기능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세계적인 현상으로 한국도 10여년 전부터 ‘재판 외 분쟁해결방안’(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인천지방법원의 경우 지난해 처리한 민사 본안사건 중 1심은 11%, 항소심은 19.6%가 화해나 조정으로 종결됐다. 이밖에 재판 도중 원고가 소를 취하하거나 심리를 거치지 않고 이행권고결정으로 처리된 사건도 상당한 비율에 달한다.

개개인의 활동영역이 넓어질수록 민사재판의 원고나 피고가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재판에 연루된 사실 자체가 전혀 불명예스러운 일이 아니다. ‘법원의 문턱에도 가보지 않았다’는 말은 더 이상 자랑거리가 아니며 오히려 사회적 활동영역이 단조롭다는 고백에 불과하다.

다만 민사분쟁이 생기면 ‘게임의 규칙’을 지키면서 깔끔하게 다툼을 매듭짓겠다는 자세가 요구된다. 한국인은 유달리 감성적인 면이 발달해 있고 체면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막상 자신이 관련된 분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은 취약하다.

법원과 변호사들도 지금보다 화해와 조정을 통한 분쟁 해결에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과거의 형식논리에 의존하는 재판에 비해 훨씬 더 사건을 깊고 정확하게 파악했을 때만 가능하며 그만큼 힘이 드는 일이다. 또 협상과 중재에 관한 전문적 소양과 식견은 주먹구구식 경험을 통해 체득되는 것이 아니며 법조인 개개인의 부단한 노력이 따라야 가능하다. 이는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사법시스템을 이 땅에 정착시키는 방법이다.

정지승·변호사·jason-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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