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법원재판 憲訴대상 안돼” 동아방송 헌소 기각

  • 입력 2003년 3월 27일 19시 10분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권성·權誠 재판관)는 27일 동아일보사가 80년 신군부에 의한 동아방송 강탈과 관련해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헌법재판소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법원의 재판 자체는 헌법소원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국가의 위법 행위는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지만 청구기간이 지났으며 의회가 국가의 불법 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입법 의무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권 재판관과 윤영철(尹永哲) 재판관은 “80년 언론통폐합 조치가 언론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을 전면적으로 침해했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소수 의견을 냈다.

권 재판관은 또 “헌정을 중단시킨 세력의 집권이 종료된 날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까지 의회가 국가의 불법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 관련 법령을 제정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입법 의무 위반”이라고 밝혔다.

동아일보사는 80년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 조치에 따라 동아방송이 한국방송공사(KBS)로 넘어가자 국가와 KBS를 상대로 동아방송 양도무효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2001년 1월 대법원이 “비상계엄이 해제된 81년 1월부터 3년 내 취소권을 행사하지 않아 취소권이 소멸됐다”며 패소 판결을 내리자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헌법재판소법 68조 1항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80년 新군부행위 ‘엇갈린 법원판결'▼

헌법재판소가 신군부의 동아방송 강탈 행위와 관련한 헌법 소원을 기각한 것은 법원의 판결은 헌법 소원의 대상이 아니라는 종전의 결정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 결정은 ‘법적 안정성’ 보호라는 측면만을 강조한 것으로 법원이 서로 모순된 판결을 내렸을 경우의 기본권 구제에는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도 있다.

▽결정의 취지=헌재의 심판 대상이 된 법률 규정은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 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는 헌법재판소법 68조 1항.

동아일보는 법원이 동아방송 반환청구 소송에서 소송을 낼 시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패소판결을 내리자 마지막으로 헌재에 헌법소원을 냈으나 이날 기각됐다.

법원의 판결에 대한 헌법소원이 받아들여질 경우 재판 결과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헌재는 또 80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계획에 따라 진행된 동아방송 강탈 행위에 대해서는 형식적 요건을 문제삼아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각하는 기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아예 심리를 않겠다는 결정.

공권력 행사에 대한 헌법소원은 그 사유가 있는 날부터 180일 이내에 청구해야 하는데 이 사건에 대한 헌법소원은 헌법재판소가 구성된 88년 9월 19일부터 180일이 훨씬 지난 2001년에 제기돼 심리할 수 없다는 것.

헌재는 이와 함께 국가배상법 등이 이미 제정됐기 때문에 국가의 불법 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국가의 입법 의무도 없다고 못박았다.

▽헌재 결정 논란=이번 결정은 법원이 헌법에 어긋나거나 서로 모순된 판결을 내려도 기본권을 보호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동아방송 강탈은 80년 신군부의 내란에 의한 전형적인 재산권 침해 사례로 꼽힌다. 대법원은 97년 4월 17일 이 같은 사실을 판결로도 확정했다. 당시 대법원 재판부는 12·12 및 5·18 사건에 대한 신군부의 집권 행위를 내란 및 헌정질서 파괴행위로 확정했다. 앞서 검찰도 수사결과 동아방송 강탈은 ‘내란의 한 과정’이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이번 헌재의 결정은 12·12 및 5·18 사건 ‘피해자’인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과 ‘가해자’인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에게 동시에 유죄를 선고한 것을 추인한 셈이다.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모순된 행위를 추인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

헌재 헌법연구관을 지낸 이석연(李石淵) 변호사는 “동아방송 강탈이 내란의 일환으로 확정된 이상 시효 소멸을 문제삼아 청구를 기각한 대법원의 판결은 모순이며 이번에 이를 추인한 헌재는 기본권을 법원의 판결보다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방기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독일의 경우 헌법소원의 90% 가량이 법원의 재판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국내 학계에서도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 소원이 원칙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다수설”이라고 말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