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서울대공원 오랑우탄의 애타는 합방식

  • 입력 2003년 4월 1일 19시 14분



“암컷 ‘오순이’와 새신랑 ‘아롱이’가 서로 등을 돌리고 꼼짝하지를 않네요. 넓은 야외 신방으로 빨리 옮겨 사랑을 나누어야 할 텐데….”

서울대공원 관리사업소가 공원 내 최고령 오랑우탄인 오순이의 재혼을 놓고 속을 태우고 있다. 합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순이와 아롱이의 합방식은 1일 오후 1시에 열렸다. 대공원 사육사들은 오순이를 우선 5평 남짓한 아롱이의 내실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나서 이들이 함께 30평 규모의 야외 신방으로 옮기도록 유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합방한 오순이와 아롱이는 긴장한 탓인지 서로 등을 돌린 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다른 걱정거리는 아롱이가 오순이를 공격하지 않을까 하는 점. 이 같은 우려는 이들의 나이 차에서 비롯됐다. 결혼 경험이 있는 오순이의 나이는 36세. 오랑우탄의 평균 나이가 35세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오순이는 사람 나이로 90세가 넘는 고령이다. 반면 대만의 동물원에 사슴 4마리와 얼룩말 2마리를 주고 지난해 4월 들여온 아롱이는 18세로 혈기가 왕성한 편이다. 또 오랑우탄 수컷 성인의 몸무게가 대개 75㎏이지만 거구인 아롱이는 100㎏을 넘는다.

대공원측이 야외 방사장을 합방 장소로 택한 것도 만약에 있을지 모를 아롱이의 공격을 오순이가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대공원 관계자는 “아직까지 아롱이가 공격하지 않아 다행이지만 언제 공격할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대공원이 이들의 합방을 결정한 것은 오순이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2001년 7월 전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내 의욕을 상실한 오순이가 2세를 낳으면 삶의 의욕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아롱이는 애초 오순이의 유일한 혈육인 ‘보배’(암컷·5세)의 짝으로 데려왔다. 그러나 보배의 나이가 너무 어려 혼담이 깨졌다. 보배는 이날 하객으로 참석해 남편이 될 뻔한 새 아버지와 어머니의 합방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 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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