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역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지방대 출신 박모씨(27). 그는 지난 2년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100여곳에 원서를 냈다 번번이 고배를 마신 뒤 인생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고 했다.
“취업에 실패하면서 내가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아요. 자격 시험을 보는 것이 두렵고, 심지어 여자 친구도 사귈 자신이 생기지 않습니다. 때론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국 사회에 ‘청년 위기(Quarterlife Crisis)’가 확산되고 있다.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패기가 넘쳐나야 할 20대 중 상당수가 자포자기하거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들고 있다.
취업문턱에서 좌절한 젊은이들은 물론 어렵게 일자리를 구한 20대들조차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이민을 꿈꾸고 있다. 또 그동안의 좌절과 실패를 한번의 시험으로 뒤집어 ‘인생 역전’을 하겠다는 청년들로 고시촌이 붐비고 있다.
지난해 10월 엔지니어링 회사를 퇴사한 조모씨(24·여·서울 강서구)는 무작정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선 내가 설 자리가 없어보인다’는 게 이유.
서울 중구의 대기업에서 e비즈니스 관련 일을 하던 김모씨(27)는 이달 초 사표를 던졌다. 2년간 과로로 쓰러질 정도로 열심히 일했지만 어느 순간 “왜 매일같이 아등바등 살아야 하나?”라는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구체적인 진로도 결정하지 않은 채 퇴사를 결심했다. 문제는 김씨와 같은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
20대의 현실이탈과 방황은 이들이 심약해진 것도 원인이지만 사회 시스템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분석이다.
올 초 연세대 발달심리학 연구실이 조사한 ‘한국 사회의 세대 집단과 라이프 스타일’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대의 성공지향성은 기성세대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강했다. 게다가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경직된 사회분위기는 결국 청년들을 낙오자로 만들거나 현실도피로 몰아넣고 있다는 진단이다.
연세대 김농주(金弄柱) 취업담당관은 “대부분의 20대들은 첫 직장을 잘 구하지 못하면 곧 낙오자가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특히 경제난이 심화돼 취업문이 더 좁아지면서 방황하거나 현실도피하려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20∼29세 청년 실업률은 8.5%로 2001년 2월 이후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 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현재 15∼29세 청년 4명 중 1명이 일자리가 없어 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동아일보가 최근 성인 1543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20대 응답자의 59.8%가 ‘가능하면 이민을 가겠다’고 답해 전체연령층(40.7%)보다 이민을 더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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