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이강숙/'자기 발견' 연습을 하자

  • 입력 2003년 4월 6일 19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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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수선하다. 세계와 나와의 관계를 이루는 모든 변수들을 헤아릴 수 없는 나를 발견한다. 이곳저곳에서 일어나는 소통의 단절이 우리들을 질식하게 만든다.

머릿속에서 막연히 생각되는 ‘나’와 ‘나는 이런 사람일 것이다’라고 구체적으로 생각한 후, 그 생각한 바를 문장으로 썼을 때의 ‘나’는 전혀 다른 ‘나’일 것이다.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나’는 ‘하늘’에서의 ‘나’일지는 모르나 ‘땅’에서의 ‘나’는 아닌 것이다. 문장으로 서술되지 않는 생각과 서술된 생각 사이에서도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자신을 숨기는 현대인…소통 단절 ▼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있지만, 침묵이 소통수단이 되지 않을 때에는 침묵의 유무 자체를 인간들은 모른다. 이 때문에 인간이면 누구나 ‘내가 누구인가’란 질문을 위한 ‘땅의 대답’을 얻어야 한다. 나에겐 소설가 젝 빅헴의 가르침이 좋아 보인다. 그는 자기 발견을 위해 카드를 준비하라고 한다. 그 카드 위에 글을 씀으로써 자기 발견을 연습하라고 한다.

카드 10장을 준비한 후, 자기를 가장 많이 움직였던 사건을 각 카드에다 적어라. 문장이 길 필요는 없다. 자기를 가장 많이 움직였던 사건은 인물 장소 생각 행동 등 여러 가지 일들과 상관될 수 있다. 쉽게 적을 수 있는 경우와 잘 적혀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쉽게 적을 수 있는 경우는 그냥 적으면 되겠지만, 쉽게 적을 수 없을 경우에는 세 가지 일을 하라. 첫째, 쓸 수 있을 때까지 시간적 여유를 가져라. 둘째, 문장으로 서술하는 일을 절대 포기하지 말라. 셋째, 자신에게 정직하라.

빅헴은 계속 역설한다. 자기 검열 같은 것을 엄격하게 해라. 쉽게 써버릴 것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 정말로 자기를 깊이 움직였던 것인지, 사실은 그런 것도 아닌데 괜히 티를 한 번 내보기 위해 깊이 움직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엄격하게 점검하라. 왜 자기를 그토록 움직였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고, 그 이유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성질의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변했다면 어떻게 변한 것인지, 또 왜 변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생각도 하라. 이미 쓰여진 카드 위에다 부연 설명이나 수정된 생각을 첨가할 수도 있다.

카드 10장을 모두 채우는 일을 보류하고, ‘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겠지’라는 생각을 한다거나, ‘다른 일부터 먼저 하자’는 태도를 갖지 말라. 이러다 보면 실패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자기 검열에 소홀한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기가 자신을 속이는 길로 들어서는 일이다. 진정으로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은 사람은 자기를 속이지 말아야 한다.

카드 10장을 정직하게 채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은 섹스, 연애, 돈, 권력, 명예 등과 상관되는 문장을 카드 위에 적지 않는다고 한다. 마음 속에는 ‘줄곧 섹스’를 생각하면서, 마음 밖에서는 보기 좋은 경험담만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카드 10장을 채운 사람은 그 카드를 다른 곳에 보관해 두고, 또 새 카드 여럿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자기 자신과 상관되는 간단한 문장을 적는 연습을 시작해야 한다. 특정 감정이 자기에게 생기는 이유,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신념, 가장 가고 싶은 곳 등을 카드 위에다 간략히 적는 연습을 하라.

▼카드에 ‘인생 10대사건’써 점검을 ▼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만든 모든 카드를 잘 보관하고, 그것을 수시로 점검하고, 보충하고, 수정하라. 구체적으로 발견되지 않는 상태의 자기를 방치해 두면, 자기 발견은 불가능하게 된다. 겉은 멀쩡한데 안을 보면 파국 직전의 가정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된 원인이 거짓 없는 자기 발견 연습을 게을리 한 탓이 아니면 소통의 문제를 소홀히 한 탓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겉으로 행복해 보이는 인간의 삶이 파국이나 갈등의 질곡으로 빠지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시기, 질투, 탐욕, 비인간성의 논리로 참 인간성을 발견하지 못한 채, 거짓 자기만을 나타내면서 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 당장 인간성 회복 연습을 위한 카드를 준비하자.

이강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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