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세이]정도언/'사스 환자 강제격리' 신중해야

  • 입력 2003년 4월 14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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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보통 때는 이에 관한 공포와 불안을 의식의 세계에 맡겨 놓는다. 그러면서 언제까지나 자신이 살아 있을 것처럼 행동한다.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잠재의식은 질병, 재난, 전쟁과 같은 충격에 의해 의식의 세계로 뛰쳐나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질병의 예를 들어 보자. 결핵이라고 하는 ‘괴질’이 번지기 시작했을 때 인류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병이 여기 저기, 이웃에서 나타나면서 알고 지내던, 친하게 지내던, 숭모하던 사람들이 창백한 얼굴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온 사회는 불안에 휩싸여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결핵요양소를 만들고 환자들을 강제로 옮겨 사회와 격리했다.

이것이 결핵요양소가 생겨난 배경이다. 이러한 ‘사회적 운동’은 결핵치료약이 개발되기까지 이어졌다. 이제는 환자가 가족과 함께 생활한다. 약 먹는 결핵환자와 같이 근무하는 것이 만원 지하철을 오래 타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한 세상이 되었다. 나병도 결핵과 같은 과정을 거쳤으나 결핵은 겉으로 안 보이고, 나병은 신체 변형이 온다는 차이로 인해 아직도 나병환자들이 집단생활을 하는 요양소가 남아 있다.

결핵의 후계자는 정신분열병으로 대표되는 정신병이다. 결핵요양소가 정신병원이 되었다. 정신병자들과 같은 사회에서 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우리 모두 “나도 언젠가는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과 달라”라고 외치면서 그 사람들을 우리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이 역시 의학의 발달과 함께 대형병원에 장기간 입원하는 환자의 수는 급격히 줄고 가족과 같이 또는 소규모 재활시설에 사는 환자의 수가 크게 늘어난 것이 선진국의 현실이다.

자, 이제 요사이 전 세계인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경우를 살펴보자. 집단적 심리반응은 결핵, 나병, 정신병, 에이즈에 대해 인류사회가 보인 것과 흡사한 경로를 거치고 있다. 최초의 불안과 공포가 사회 전체의 공황으로 발전하고, 강제격리가 시행되며, 이러한 조치는 법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의학적 측면에서 보면 사스는 이미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밝힌 것처럼 인플루엔자의 파괴력에도 못 미치며 완벽하지는 않지만 현대 의학에 의해 통제가 가능한 병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도 사스환자와 접촉자를 필요할 경우 강제 격리하는 조처가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인간의 취약성을 집단적으로 투사한 나머지 불필요하게 공포를 확대 재생산하지는 않았는가.

정부는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합리적 대책을 세워 시행하기 바란다. 과도한 수준의 강제 격리를 시행한다면 인권에 대한 시비를 떠나 실제 사스에 걸렸을 환자, 접촉자, 그리고 가족이 증상이 있어도 당국에 자발적으로 보고하지 않고 지하로 숨어 버려 조기 진단과 치유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숨질 가능성도 있다.

‘괴질’에 대해 인류가 보여 온 집단심리의 그림자를 역사를 통해 살펴보지 않고 또 하나의 집단적 불안을 만들어 낸다면 이것 역시 문제다.

정도언 서울대 의대 교수·정신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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