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徐교장에 사과요구 정당한가＂ KBS 배심원투표 논란

13일 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에서 진행된 충남 예산군 보성초등학교 서승목(徐承穆·58) 교장 자살사건을 주제로 한 생방송 토론회가 끝난 뒤 참석자들이 배심원 판결 결과에 반발하며 심야에 농성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따라 KBS측은 방송 사상 극히 이례적으로 토론회를 다시 갖기로 했다.

▽방송 과정=13일 오후 11시반부터 80분 동안 KBS 2TV의 생방송 토론 프로그램 ‘100인 토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가 끝난 뒤 프로그램 참석자들과 방청객 50여명이 “방송 조작 가능성이 있다”며 신관 공개홀에서 3시간 동안 항의 농성을 벌였다.

이날 토론회에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황석근 대변인,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모임 고진광 대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송원재 대변인,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의 박경양 회장 등 4명이 패널로 참석했다.

패널들은 이날 여교사에게 차시중을 요구했다는 서 교장에 대한 전교조의 사과 요구가 정당한 대응인지, 아니면 과잉대응인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또 KBS측은 교총과 전교조측에서 30명씩 배심원으로 참가해 함께 토론을 벌였고 나머지 40명은 중립적인 의견을 가진 배심원으로 구성됐다고 밝혔다.

토론이 끝나기 전 제작진이 배심원으로 선정한 100명을 대상으로 어느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녹색(정당대응)과 빨간색(과잉대응) 버튼을 눌러 의사 표시를 하도록 한 결과 ‘정당대응’이라는 의견이 57명, ‘과잉대응’이 40명으로 나왔다.

사회자인 정진홍씨는 투표 결과에 다소 당황해 하며 “사전에 인터넷 폴을 실시했을 때는 과잉대응과 정당대응이 8 대 2 정도로 나왔는데 이런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모르겠다”며 방송을 마쳤다.

▽배심원 방송오류 제기=그러나 방송 직후 방청석의 배심원 사이에서 “버튼을 누른 순간에는 빨간불이 훨씬 많았는데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교총측은 “배심원들을 상대로 확인해 본 결과 전교조가 과잉대응했다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 방송 투표결과는 다르게 나왔다”며 “‘과잉대응’에 투표했다는 배심원 58명에게서 서명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교총측은 “실제 배심원들의 의견과 결과가 같은지 직접 일일이 대조 확인하겠다”며 제작진에 배심원 명단 제출을 요구했으나 제작진은 이를 거부했고 논란 끝에 20일 같은 주제로 다시 토론회를 갖기로 약속하고 오전 4시경 농성을 풀었다.

이에 대해 제작진의 최석순 프로듀서는 “투표 조작이나 기계적 결함 가능성은 없고 배심원 중에 녹색과 빨간색 버튼을 바꿔 눌렀을 가능성은 있다”며 “같은 패널과 배심원이 참가한 가운데 토론회를 다시 갖기로 잠정 합의했지만 두 교원단체와 배심원의 입장이 달라 구체적인 내용은 더 협의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토론 방식 문제=방송 전문가들은 사회적 이슈를 토론 주제로 선택하는 것은 좋지만 이 사건의 경우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만큼 토론으로 그치지 않고 대표성이 없는 100명의 의견을 물어 결론을 내는 방식을 취한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안민호(安民浩) 교수는 “오락 프로그램이나 가벼운 주제라면 모르지만 이처럼 민감한 사안을 놓고 샘플링도 정확하지 않은 배심원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통해 결론을 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차라리 정보제공 차원에서 KBS 1TV 심야토론의 주제로 다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여교사 진모씨 사직서 제출▼

충남 예산 보성초등학교 서승목(徐承穆·57) 교장 자살 사건에 직접 연루된 기간제 여교사 진모씨(29)가 14일 사직서를 냈다. 또 사건에 연루된 교사의 퇴진을 요구하며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은 학부모들이 이날 조건부 등교 의사를 밝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충남지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경 진 교사가 지부를 방문, 사직서를 대신 내 달라고 요청해 이를 팩스로 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이 학교의 한 교사가 2시간 뒤 전교조 지부를 방문해 “사직서는 원본이 있어야 수리될 수 있다”며 원본을 가져갔다는 것.

학교 관계자는 “교장 업무를 대행 중인 홍모 교감이 국회에 출석해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았다”며 “교감이 출근하는 내일 수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학교 학부모들은 이날 회의를 열어 이번 사건에 연루된 전교조 교사 2명이 학부모들에게 공식 사과하면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학부모 백모씨(38)는 “아이들이 더 이상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렇게 결정했다”며 “교사들이 학부모의 의견을 수용한다면 학부모들도 해당 교사들에게 (아이들의 등교 거부에 대해) 사과하겠다”고 말했다. 사과 범위에 대해 그는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하면 될 것”이라며 “학부모들의 의견을 오늘 오후 중재인을 통해 전교조 교사에게 전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예산경찰서는 진 교사에게 16일 오전 10시까지 출석할 것을 요구했다.

예산=지명훈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