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청도 석빙고, 원형훼손 심각

  • 입력 2003년 4월 14일 22시 54분


‘보물 문화재 석빙고(石氷庫)가 신음하고 있다.’

11일 오후 경북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 석빙고(보물 323호). 초등생 몇 명이 석빙고 천장을 덮은 돌(홍예석) 위를 오르내리며 놀았다. 청도 석빙고의 지붕을 덮었던 진흙은 오래전에 사라지고 화강석만 앙상하게 남아있다.

빙실(氷室·길이 14.75, 너비 5, 높이 4.4m)안은 엉망이었다. 누구나 들어가도록 개방된 빙실의 바닥에는 담배꽁초가 여기저기 있었고 숟가락 같은 쇠붙이와 유리조각, 나무토막도 흉하게 나뒹굴었다.

빙실 바깥에서 안으로 던진 것으로 보이는 돌덩이도 여러 개 놓여있었다. 근처를 지나가던 인근 초등학교 박모군(4학년)은 “어른들이 석빙고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고 말했다. 빙실 안은 사람들이 드나든 흔적이 가득했다.

청도 석빙고는 1713년(조선 숙종) 축조된 것으로 전국의 석빙고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근 주민들은 “특별히 관리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며 “빙실 안에 아이들이 놀다가 덮개돌이 무너지면 어쩌나 싶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석빙고 입구에는 “보물로 지정된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붕괴 및 추락 위험이 있으므로 내부 출입을 금지하며 상단에 절대 올라가지 마십시오.-청도군수”라고 쓴 안내판만 덩그러니 서있다. 안내판마저 돌에 맞아 구겨지고 글씨도 지워지는 등 평소 관리를 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나라 석빙고 가운데 가장 걸작으로 평가받는 경주시 인왕동 경주석빙고(보물 66호). 1738년(조선 영조)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경주 석빙고는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지만 빙실(길이 18.8, 너비 5.94, 높이 4.97m)은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두께 3㎝가량의 쇠를 촘촘하게 엮어 입구를 막아버린 바람에 석빙고를 찾는 사람들은 빙실 내부를 살펴보기 위해 고개를 넣지도 못하도록 만들었다. 철문은 빙실 입구 돌과 연결해 석빙고의 원형을 되레 훼손하고 있다.

서울에서 경주로 신혼여행을 왔다는 한 부부는 “경주 석빙고가 매우 과학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내부를 살펴보고 싶었는데 철문이 가로막아 흉한 느낌”이라며 “빙실 안으로 마구 들어가는 사람들 때문이겠지만 그렇다고 귀한 문화재를 아예 밀폐해 버릴 수 있느냐”고 말했다.

석빙고는 전국에 6곳(안동 창녕 현풍 영산) 있으며 북한 해주에도 보물급 1곳이 있다.

경주=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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