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표류하는 유아교육법

  • 입력 2003년 4월 28일 17시 44분


전국 대학 유아교육과 학생 대표로 구성된 전국유아교육학생협의회 회원 학생들이 28일 유아교육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박경모기자
전국 대학 유아교육과 학생 대표로 구성된 전국유아교육학생협의회 회원 학생들이 28일 유아교육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박경모기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선거 공약으로 보육 문제 해결을 내세웠지만 참여정부 들어서도 유아 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김화중(金花中) 보건복지부 장관이 보육 업무를 여성부로 이관하겠다고 밝히면서 학계와 관련 단체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고 제15대 국회부터 추진돼온 유아교육법 제정도 단체별로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민주당 이재정(李在禎)의원과 한나라당 김정숙(金貞淑) 의원이 각각 지난해 12월과 이달 1일 대표 발의한 유아교육법안이 제출돼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28일 오후 두 법안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한 공청회를 가졌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선거 공약으로 보육 문제 해결을 내세웠지만 참여정부 들어서도 유아 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김화중(金花中) 보건복지부 장관이 보육 업무를 여성부로 이관하겠다고 밝히면서 학계와 관련 단체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고 제15대 국회부터 추진돼온 유아교육법 제정도 단체별로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민주당 이재정(李在禎)과 한나라당 김정숙(金貞淑) 의원이 각각 지난해 12월과 이달 1일 대표 발의한 유아교육법안이 제출돼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28일 오후 두 법안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한 공청회를 가졌다.

▽유아교육 현황=국내 유아 정책은 교육과 보육으로 이원화돼 있다. 2002년 12월 현재 유아교육 대상인 만 3∼5세 아동은 197만4055명. 유치원 취원아동이 27.8%, 보육시설에 맡겨진 3∼5세 아동 28.6%, 미술학원 등 기타 사설 유아교육 기관에 다니는 아동은 28.4%에 달한다.

1991년 영유아보육법이 제정됐지만 유아교육은 초중등교육법에 부속적으로 규정돼 있어 유아교육계는 유아의 균형적이고 조화로운 발달을 저해한다고 주장한다.

유아교육법 제정은 국민의 정부 대선 공약으로 97년과 99년 두 차례에 걸쳐 국회에 상정됐다가 2000년 5월 제15대 국회 폐회로 자동 폐기됐다.

지난해 교육인적자원부의 유아교육 예산은 353억원, 보건복지부의 보육시설 예산은 2200억원으로 현재 국내 유아정책은 교육보다는 보육 기능이 강한 형편이다.

▽쟁점=유아교육계와 교육단체들은 유아교육을 공교육화해 동일한 연령의 유아가 동질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현재 교육인적자원부가 관할하는 유치원과 복지부가 관장하는 보육시설인 어린이집을 한 부처로 통합 관리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복지부 등 반대론자들은 “유아 정책은 교육 측면뿐만 아니라 저소득층 복지 정책 등과도 맞물려 있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반박하고 있다.

김 의원의 법안은 만 3∼5세 아동에 대한 교육과 보호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에듀캐어(Educare)’ 개념의 교육복지형 유아학교제도를 도입하는 것과 취학 직전 아동에 대한 무상교육과 보호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또 맞벌이 부부, 핵가족화의 증가에 따라 종일제와 상시 운영 시설에 대한 재정지원을 통해 기존의 교육기능에 보호기능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만 3∼5세는 교육부가 유아학교 체제로, 0∼2세는 복지부가 보육시설로 담당한다는 것이다.

이 의원의 법안 역시 ‘유아학교’ 명칭은 없지만 유치원을 사실상 학교로 인정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보육시설과 사설 유아교육 기관들은 유치원만 유아학교로 개편할 경우 어린이집과 학원은 유아 모집이 어려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두 법안 모두 보육시설의 유아학교로의 전환 인정, 보육시설 근무 교직원의 유아학교 전환 인정 등 그동안 유치원과 보육시설간에 쟁점이 됐던 부분은 제외했다.

▽찬반 토론=이날 공청회에서 중앙대 이원영 유아교육과 교수는 “유아교육법은 유치원과 보육시설이 공생할 수 있도록 제정돼야 한다”며 “일정 수준의 교육과정과 교사 자격 기준과 시설을 충족하는 어린이집은 유아학교와 동등하게 인정하는 내용을 포함하자”고 제안했다.

한국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 정혜손 회장은 “유아교육 기관의 난립으로 교육의 질도 천차만별이며 어떤 시설에 다니느냐에 따라 동일 연령의 유아라도 불평등한 교육을 받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과 보육의 통합 관리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영유아보육학회장인 표갑수 청주대 교수는 “유치원은 교육시설이지만 어린이집은 복지시설로 설립 목적과 기능이 다르다”며 “교육의 다양성과 소비자의 선택권을 위해 교육과 보육 기능을 획일적으로 통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승춘 전국유아미술학원연합회장은 “유아교육 대상의 27% 밖에 수용하지 못하는 기존 유치원이 보편적인 공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현재 운영 중인 사립 교육시설에 대한 균형적인 지원과 국공립 시설의 획기적 증설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아교육법 제정 촉구 집회=전국유아교육학생협의회는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문화광장에서 유아교육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국회까지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유아의 전인적인 발달과 성장을 촉진하는 유아 교육이 홀대를 받고 있다”며 “국회는 유아교육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아교육법 제정 실현을 위한 유아교육대표자 연대도 이날 성명을 내고 “부실한 유아교육을 정상화하고 학부모의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유아교육법 제정을 통해 유아교육을 공교육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전문가 유아학교 찬반▼

●“유치원 이미 학교기능 담당”

우리나라에 처음 유치원이 생긴 것은 1897년 부산 거주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1913년부터는 구한말의 귀족들이 경성 유치원 등을 설립하고 일본인 교사를 채용해 자녀들을 일본인답게 기르는 데 이용했다. 1910년대 국내 유치원 교육자들이 구국운동을 전개하며 자녀를 조선인답게 기르려고 노력했지만 오늘날까지 유치원은 부유층 자녀가 다니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일제시대의 잔재인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고치고 국민학교는 초등학교로 바꿨다. 그런데 왜 유치원은 그대로 둬야 하는지 생각해 볼 때다.

유치원은 교육인적자원부의 유치원 교육과정 준수는 물론 교육부 자격증을 가진 교사가 가르치고 장학사들로부터 장학을 받는 등 유치원은 이미 학교의 기능을 하고 있는데 ‘유아학교’라는 명칭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일제시대의 용어인 유치원이란 이름을 지금까지 써왔지만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 미래의 주인공인 유아들에게 새 시대에 알맞은 이름인 유아학교로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 유치원의 역사는 100년 이상 됐지만 독립된 법이 없어 초중등교육법에 부속으로 규정돼 있는 반면 어린이집은 1991년 제정된 영유아보육법의 적용을 받고 있다.

유아교육법안의 핵심은 유치원의 명칭을 유아학교로 바꾸는 것이다. 이런 논의는 1997년부터 시작됐지만 보육시설 및 학원의 반대로 인해 아직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유아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앞세우는 이기주의 때문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유치원을 유아학교로 바꾸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러 가지 이해관계 때문에 시간을 끌다 자동 폐기시켰다.

유아교육을 집단 이기주의나 정치적인 논리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유아의 교육을 위해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를 따져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원영(중앙대 교수·유아교육)

●“초등校에 유아학년 두면 해결”

국가의 정책과 제도는 그 나라의 사회 경제 정치구조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제도나 정책의 개혁은 일부 계층이나 단체를 위한 것일 수는 없는 만큼 반드시 사전 점검과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교육제도 개혁도 마찬가지다. 유아교육 정책을 결정할 때도 오랫동안 영유아 교육 및 보육의 절반을 맡아 온 보육계의 의견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유치원은 교육기능을 담당하지만 보육시설은 아동 보육을 대신함으로써 근로 여성의 복지, 저소득층 지원을 통한 가정복지, 부적절한 양육 환경을 가진 아동에게 보다 나은 환경을 제공하는 아동 서비스 등 통합적 복지 기능을 갖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교육과 보육기관도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요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선택권 보장이 필수적이다. 학부모는 자녀의 재능을 발굴하고 키워주기 위해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물론, 미술이나 음악학원에도 보낼 수 있다. 이런 욕구를 유아학교가 모두 채워줄 수는 없다. 예산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는다면 유아학교 역시 민간 의존도가 높아 유아교육의 공교육화는 헛된 구호일 수가 있다.

국민교육 차원에서 취학아동의 연령을 1세 하향 조정해 조기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다면 미국 호주 등에서 실시하는 대로 초등학교에 유아학년을 두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많은 비용을 추가로 투입하지 않고도 명실상부한 공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현재의 관리체제를 크게 바꾸지 않고 약간의 인력 보강으로도 얼마든지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치원에 보호의 개념을 도입하면 현재의 보육시설과 기능이 중복되므로 아예 유치원을 보육시설로 전환하는 것이 낫다. 그렇게 되면 관장 부서도 교육인적자원부가 아닌 보건복지부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만일 보호개념을 포함한 유아교육법을 제정한다면 그것은 바로 옥상옥(屋上屋)이나 다름없다.

표갑수(청주대 교수·한국영유아보육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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