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美 명문大 진학 앞둔 대원외고 '토종' 4인방

  • 입력 2003년 4월 29일 18시 51분


《얼마전 서울 대원외국어고생 36명이 하버드와 예일 등 미국 명문대에 곧장 진학하게 됐다는 보도가 나와 뭇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이들 전원은 이 학교 유학반 이른바 'SAP(Study Abroad Plan)'출신이다.

SAP구성원 중 절반 이상이 외국에서 초중고교 경험이 있는 학생들. 그러나 정작 세인의 관심을 끄는 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학생들이 아닐까.24일 강남구 압구정동 스타벅스에서 만난 정준영(鄭竣泳·서울 강남구 삼성동·19)이준호(李準鎬·서울 송파구 가락동·19)홍경원(전남여수·18)김영준(金永俊·서울 강남구 삼성동)이 바로 이 '토종'들이다.이들은 모두 SAT1400점이상(만점 1600점)을 기록해 올 9월 하버드,조지타운,워튼,카네기멜론 등 내로라하는 미국 명문대 입학을 기다리고 있다.》

‘토종으로서 미국 명문대 입학 허가증을 받기까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감동적인 ‘석세스 스토리(success story)’가 나오리라는 예상은 약간 빗나갔다. 물론 이들은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성공의 키워드는 다양한 정보와 인적 네트워크, 그리고 연평균 5000만원에 달하는 학비 조달을 후원해 줄 부모였다.

이들에게 성공을 가능케 해 준 시스템은 대원외고 유학반 SAP다. SAP는 대원외고가 외국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재학생을 선발해 한국의 수학능력시험에 필요한 정규 교육과 함께 하루 3시간 따로 SAT 수업을 하는 프로그램.

수업은 재미교포나 미국인 선생님의 영어 강의로 진행되며 주로 SAT 교재와 작문 독해 훈련으로 진행된다. 98년부터 시작해 매년 졸업생 전원이 미국의 톱 랭킹 대학을 포함, 각 학교 입학 허가증을 받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외국생활 경험 없이 영어를 잘하게 된 비결을 묻자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SAT 시험과 영어는 약간 다르다’는 의외의 말을 했다.

“한국의 수능과 비슷하다. 국어에 나오는 고어(古語)같은 것을 일상에서 쓰지 않는 것처럼 SAT도 마찬가지다. 전문적인 단어가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단지 외국인과 의사소통을 잘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이준호)

이들은 무엇보다 유학반 초기 시절, 좌절을 이기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바늘구멍 같은 대원외고 경쟁률을 뚫고 한숨 돌렸다 싶었는데 ‘산 넘어 산’이었다는 것이다. 과연, 이렇게 기를 쓰고, 게다가 한국과는 비교되지 않는 엄청난 등록금을 써 가며 미국 대학에 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없었느냐고 묻자 하나같이 이렇게 답했다.

“돈들인 만큼 얻는 게 있을 것이다. 한국은 대학생이 되면 공부를 너무 안한다. 술 먹는 게 일이다. 미국 대학은 일단 자기가 뽑은 학생들을 책임지고 더 나은 인간을 만들어 준다.”

미국 공부가 끝나면 귀국할 것이냐고 묻자 2명은 예, 2명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학가면 일단 한숨 돌리는 한국 학생들에 비해 고등학교 때보다 더 어려운 대학 생활을 보낼 자신들이야말로 ‘인생에서 최악의 코스를 밟고 있다’며 왁자하게 웃었다.

“SAT 공부하면서 얻은 것은 단지 영어 실력이 아니라 세상공부였다. 봉사활동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고 에세이 공부를 하면서 나에 대한 성찰을 통해 보다 열린 사고를 갖게 됐다. 한국 공부만 했다면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김영준)

“미국 대학에 가면 세계 여러 나라 학생들을 만날 것이 가장 기대된다. 어차피 인생은 베팅이고 유학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번 걸어 보자는 생각이 많다.”(정준영)

“무엇보다, 자신감이 중요하다. 외국에서 오래 공부한 친구들 중에 따로 SAT 공부도 하지 않고 바로 원서를 내는 모습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었지만 부러워할 그 시간에 단어 하나를 더 외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홍경원)

이들은 이제 갓 스물을 바라보는 어린 나이들인데도, 벌써 ‘성공’을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하고 얼마만큼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할지를 체득한 듯했다.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도, 자신감도 대단했다.

아직은 젊은 나이, 인생의 새로운 출발 앞에서 호흡을 고르고 있는 이들이 각자 바라는 바 커리어의 성공과 삶의 성공을 함께 이룰 수 있기를, 그리고 삶은 항상 그런 네트워크와 시스템의 도움이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 이들이 부디, 남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베풀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헤어졌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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