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경찰청은 지난달 30일 오전 기자회견을 자청해 “돈을 건네주며 비디오로 촬영한 후 고속순찰대 6지구대 경찰관에게 거액을 요구한 공갈범 검거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돈을 받고 위법을 눈감은 공복(公僕)의 ‘부정’ 보다는 경찰관을 농락한 공갈범의 ‘부도덕성’에 잔뜩 무게를 실었다. 이날의 회견도 한 언론사가 취재를 시작하자 마지못해 마련한 것.
당시 경찰은 “4월 20일경 협박 편지와 돈을 받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6지구대에 배달됐고, 29일 보고를 받은 뒤 즉각 진상조사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이는 곧 거짓으로 판명됐다.
6지구대의 한 간부는 24일 비디오테이프가 전달되자 마자 경남경찰청에 보고했고, 경찰은 일주일 가량 쉬쉬하며 자체조사를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기자들의 요구에 경찰은 회견 몇 시간 뒤 협박편지 한통을 공개하면서 또 사실을 왜곡했다. 편지에 거명된 7명은 경찰관이 아니라고 둘러댔으나 확인 결과 모두 전직 6지구대원으로 밝혀졌다.
98, 99년경 뇌물수수 장면을 촬영한 협박범이 3년이 지나서야 금품을 요구했다는 경찰 발표도 미심쩍기는 마찬가지다. 비디오테이프에 얼굴이 나타난 11명의 경찰관들이 오랫동안, 개별적으로 협박을 받았을 가능성마저 제기됐다.
감사와 수사부서 경찰관들은 ‘윗분의 뜻’이라며 비디오테이프와 협박편지 세 통을 내놓지 않았다. 더 부끄러운 내용이 들어있을지 모른다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과거 교통경찰관에게 5000∼1만원을 주고 딱지를 떼이지 않았던 체험담은 술자리의 단골 안줏감이었다. 지금 경찰도 그렇다고 믿는 운전자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3월말 ‘열린 행정’을 강조하며 부임한 이택순(李宅淳) 경남경찰청장은 경찰서를 초도 방문하면서 형식을 파괴하고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으려고 애쓰고 있다.
이 청장이 진정 달라진 경찰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이번 사건의 진상을 한 점 의혹없이 파헤치는 일이다.
경찰관의 수뢰와 불법 묵인, 은폐 등을 ‘과거 완료형’으로 만드느냐, 아니면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 의심받느냐는 순전히 그의 의지에 달렸다. 그런 마당에 비디오테이프와 편지를 감춰 둘 이유가 있는가.
창원=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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