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만 크면 만사 해결인가"…노동현장 ‘파업 만능’ 우려

  • 입력 2003년 5월 7일 18시 26분


‘연전연승!’

합법적으로 파업 등 집단행동을 할 수 있는 근로자가 아닌 전국운송하역노조 화물연대가 ‘실력 행사’에 나선 끝에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지자 한 노사문제 관계자가 내린 촌평이다.

두산중공업 사태와 철도 노사 협상에 이어 이번 화물연대 파업까지 새 정부 들어 발생한 3건의 분규가 모두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결말이 맺어졌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힘의 만능주의’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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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올해는 주5일 근무제를 비롯해 비정규직 처우 개선, 기업연금제 도입, 공무원노조 허용 등 해결해야 할 굵직한 현안이 산적해 있어 이 같은 우려가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다.

힘의 만능주의가 일반화될 경우 오히려 노동자측에 힘을 실어주려는 현 정부의 발목을 잡고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힘의 승리인가=화물연대 사태에 앞서 두산중공업과 철도노조의 분규도 사실상 노조의 완승으로 끝났다.

두산중공업 노조는 권기홍(權奇洪) 노동부 장관의 중재로 △조합원 개인에 대한 가압류 및 손해배상 소송 철회 △해고자 5명 복직 △지난해 파업 때 무단결근 처리로 인한 임금 손실분의 50% 보전 등의 성과를 얻어냈다.

또 철도노조는 인력 충원, 해고자 복직, 기관사 1인 승무 폐지 등의 주장을 대부분 관철했다.

화물연대 역시 실력 행사에 나서지 않았다면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을 수 있다.

화물연대측과 대화를 거부하던 화주들이 사태를 풀기 위해 협상 테이블에 앉기로 한 것도 소득이다. 포스코 INI스틸 동국제강 등 화주들은 그동안 “우리는 운송업체와 수송계약을 하기 때문에 화물차량 운전사들은 대화 상대가 아니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었다.

그러나 권 장관은 7일 기자간담회에서 “두산중공업의 경우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훼손하는 등 사용자가 들어주기 어려운 부분까지 수용한 것이 사실이지만 철도 분규는 정부 정책을 재천명한 것이거나(민영화 철회), 과거 노사 합의사항을 이행(해고자 복직)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권 장관은 또 “화물연대 사태 역시 오랜 기간에 걸친 대화 노력이 사태를 진전시키고 있는 것이지 결코 이들의 힘에 밀려 요구를 들어준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참여정부의 노동정책 어디로=권 장관은 “노사간 힘의 균형을 바탕으로 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구축한다는 정부의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며 “그러나 이번과 같은 폭력사태에 대해서는 주동자 구속 등 법 집행을 엄정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영계는 현 정부의 노동정책이 노사간 힘의 균형이 아니라 ‘불균형’ 상태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동응(李東應) 정책본부장은 “정부가 노사갈등을 정치 논리로 풀려는 경향이 강하게 보인다”며 “계속 정치 논리를 앞세우면 시장과 경제가 왜곡되고 사회질서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동계 내부에서조차 “매번 정부가 나서서 분규를 해결하려 한다면 노사의 자율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며 “정부는 본연의 역할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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