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3년 전부터 할머니를 돌보고 있는 자원봉사자 황선환(黃善煥·37·프리랜서 번역가·서울 관악구 신림동)씨.
평소 군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황씨는 200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군위안부 할머니를 돌보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했다.
하지만 할머니에게 다가가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 할머니를 만나던 날, “형식적으로 할 거면 오지 말라”는 할머니의 핀잔 섞인 말에 황씨는 꽤나 당황해야 했다.
그러나 그가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한 달 동안 빠짐없이 참석하는 모습을 보며 할머니는 차츰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스무 살 때 친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답니다. 처음엔 할머니를 돌본다는 생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지만 여러 가지 인생 경험을 전해 듣고 삶의 지혜를 배우면서 저 역시 할머니에게 많이 의지하게 됐습니다.”
황씨는 한 달에 2번가량 할머니를 찾아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꽃도 피운다. 그때마다 황씨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등 먹을거리를 준비한다.
할머니는 황씨가 오는 날을 달력에 표시해 놓고 정성껏 식사를 준비해 놓고 기다린다. 황씨가 인사를 건네면 할머니는 “바쁠 텐데 왜 왔느냐”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먹을 것부터 시작해 작은 것 하나라도 챙겨주려고 애쓰는 할머니와 찬밥으로 대충 식사하지 말라며 걱정해 주는 황씨의 모습은 여느 모자(母子)지간과 다름없다.
할머니는 “선환이가 자주 전화하고 찾아와서 얼마나 든든하고 반가운지 모른다”며 “자기 일도 알아서 잘 하는 착한 아들”이라고 자랑했다.
할머니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전철과 버스를 3번이나 갈아타며 매주 빠지지 않고 수요집회에 참석해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또 기회가 닿는 대로 미국 일본 등을 방문해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도 알리려 애쓰고 있다.
“할머니는 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정직한 삶을 살라고 당부하세요. 한평생 피해를 보기만 했던 당신의 경험에서 나온 말 같아 가슴이 아플 때가 많아요.”
황씨의 소망은 최근 치매 초기 증세와 노환을 겪고 있는 할머니가 좋은 시설에서 치료받으며 지내는 것. 이곳저곳 수소문하고는 있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안타깝기만 하다.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너도 좋은 짝 만나서 잘 살아야지.”
이 날 할머니는 황씨가 가슴에 달아준 카네이션을 보며 내내 함박웃음을 지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눈물로 만난 母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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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총련 수배자와 가족들이 8일 어버이날을 맞아 연세대 앞에서 카네이션 달아주기 행사를 열었다.
한총련 수배자 부모 2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이날 행사에서는 한총련 수배자 10여명이 참가해 부모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다.
행사에 참가하지 못한 한총련 수배자들은 동료 학생들을 통해 부모에게 카네이션을 전달했다.
수배자들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의 자유를 위해 청와대 법무부 국회 등에 쓴소리를 하고 단식까지 하시는 부모님의 사랑을 보면 한없이 작아질 뿐”이라며 “고향 가는 차표를 사들고 부모님의 주름진 얼굴에 웃음꽃이 필 그날까지 함께 열심히 싸워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어머니 한순옥씨(50)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린 수배 3년째를 맞는 안은미씨(27·여·단국대 전 부총학생회장)는 “어머니를 만난다는 생각에 이틀 전부터 잠을 설쳤다”며 “단식 농성을 하는 어머니를 보니 불효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지만 더 강해진 어머니의 모습에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한총련 수배자 가족 10여명은 수배 해제와 구속 학생 석방을 정부에 요구하며 6일부터 사흘째 연세대 정문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편 경찰은 이날 행사에 참가한 수배 학생들을 검거하지 않았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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