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아들을 기르던 33세의 L씨는 얼마 전 다섯 살 위의 현재 남편과 재혼했다.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없던 남편은 L씨의 아들을 친자식처럼 잘 대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L씨는 아들이 그린 가족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림 밑에 이름을 쓰면서 자신의 성은 빼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아들에게 새 아버지와 성이 다른 이유를 설명해주고, 학교에도 찾아가 가정사를 밝힌 후 도움을 구했다. 이들 가정은 지금도 별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이처럼 호주제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재혼 가정 자녀들이 새 아버지와 성이 달라서 겪는 어려움이다. 하지만 최근 이혼과 재혼이 급증하면서 이런 갈등을 흡수할 만한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 L씨의 가정처럼 적극적인 해결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요즘 호주제 폐지, 혹은 개정 논란이 일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을까? 필자는 일각에서 호주제를 ‘남녀의 힘겨루기’로 보는 시각을 우려한다. 분명한 것은 남자의 기득권을 빼앗아 여성의 지위를 높이자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남자들 역시 호주제 논의를 여성운동의 연장으로 인식해서도 안 될 것이다.
사회적 합의 없이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이다. 지금 남성들에겐 ‘여성이 너무 나서는 것 아니냐’ 혹은 ‘그동안 여자들이 고생했으니 남자가 양보할 차례다’라는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동등한 인격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재혼 가정의 어려움이 호주제 폐지의 주요 이유이긴 하지만 실제 재혼 가정에서 이 문제는 여러 갈등 요인 중 하나에 불과하다. 가족과 가족이 만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면서 겪게 되는 더 큰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호주제 문제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두루 수렴하는 등 객관적이고도 열린 사고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이웅진 ㈜좋은 만남 선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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