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공주박물관 어이없는 보안불감증

  • 입력 2003년 5월 16일 18시 38분


15일 충남 공주시 중동 국립공주박물관에 2인조 강도가 침입, 국보 247호 금동보살입상을 비롯한 문화재 3점을 훔쳐 달아났다. 이종환 관리계장(42)이 도난당한 문화재가 전시돼 있던 진열장을 가리키며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박주일기자
15일 충남 공주시 중동 국립공주박물관에 2인조 강도가 침입, 국보 247호 금동보살입상을 비롯한 문화재 3점을 훔쳐 달아났다. 이종환 관리계장(42)이 도난당한 문화재가 전시돼 있던 진열장을 가리키며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박주일기자
15일 밤 발생한 사상 초유의 국립박물관 강탈사건은 안이한 문화재 관리, 총체적인 보안 불감증이 빚은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1952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서봉총 금관 모조품이 도난당한 사건이 있으나 직원을 묶어두고 진품 국보를 강탈해 간 사건은 전례가 없었다.

국립공주박물관은 이름만 ‘국립’이었을 뿐 국보를 보관한 전시실에 폐쇄회로TV(CCTV) 한 대도 없었으며 외부 침입자를 감지, 경보를 울려주는 적외선감지장치의 작동 여부를 놓고도 박물관측과 당직자의 주장이 상반되는 등 총체적인 부실을 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작동 멈춘 보안시설=이 박물관에는 적외선감지기 6대(1층 2대, 2층 4대)와 CCTV 4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보안장치는 범인들이 1층 전시실을 헤집고 다니는 동안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우선 적외선감지기는 가동이 제대로 되었는지 자체가 의문으로 제기되고 있다.

범인 몽타주

국립중앙박물관은 “당직 근무자가 순찰을 위해 적외선감지기를 꺼두었던 것 같다”고 발표했으나 당직자 박모씨는 “적외선감지기를 작동시켜 놓았다”고 주장해 적외선감지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더구나 이 적외선감지기는 외부 침입을 감지한 뒤 경찰이 아닌 자체 당직실에만 경보음을 울리도록 되어 있어 이번처럼 당직자가 위협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CCTV 4대는 범행 무대인 1층에는 아예 설치돼 있지 않았다. 2층에 설치된 것도 관람시간(오전9∼오후6시)에만 가동되는 것으로 나타나 사실상 ‘방범용 기능’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박물관 주변은 주택가로 담을 넘어 박물관에 침입할 수 있는데도 아무 경보장치를 설치하지 않았다.

▽총체적인 보안 불감증=건물로만 볼 때 1972년 세워진 공주박물관은 국립박물관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1995년 유물이 늘어나자 1층 강당을 전시실로 바꿀 정도. 그러나 올해 10월 일시 휴관하고 내년 상반기 신축 건물로 이전을 앞두고 있어 보안관련 시설을 전혀 보강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공주박물관 관계자는 16일 “새 박물관으로 이전할 예정인 만큼 보안시설 설치가 중복투자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그동안 방범장치 설치를 소홀히 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공주박물관은 더구나 국립박물관 중 유일하게 별도의 방재실을 갖추지 않았다. 결국 전문 방재요원이 아닌 당직자 1명이 박물관 전체를 밤새 지켜야 하는 실정. 공주박물관은 관장을 포함해 직원이 12명으로 지방박물관 중 가장 적은 수여서 일주일에 1번 정도 숙직을 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다른 지방박물관의 경우 별도 방재실에 경비업체 직원 2명이 상주하고 있고 이들 외에 청원경찰이 외부 초소를 지키는 등 2중 3중의 대책을 세우고 있다.

사건 상황 파악에도 관계자들은 우왕좌왕했다. 이건무(李健茂)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사건직후 “당직자가 바람을 쐬기 위해 잠시 셔터를 올리고 문을 열어놓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직자 박씨는 “공주박물관에 부임한 지 1년이 됐지만 지금까지 셔터를 내려본 적이 없다. 유리문 잠금장치만 사용했다”고 상반된 주장을 폈다. 방범관리가 평소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드러낸 것.

▽도난된 유물 팔 수 있나=문화재 절도 사건의 공소 시효는 사실상 없다. 지난해 관련법 개정으로 문화재 도난 시점이 아닌 유통 시점부터 공소 시효가 적용되기 때문. 또 워낙 지명도가 높은 유물이어서 국내에서는 골동품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다.

외국으로 밀반출될 경우도 공식적인 경매를 통해 팔릴 가능성은 없다. 박물관 관계자는 “곧바로 유네스코에 도난 문화재로 신고할 예정이므로 유물이 경매 시장에 나온다면 즉각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공주=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도난 국보 가치는?▼

15일 밤 국립공주박물관에서 강탈당한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은 7세기경 백제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문화재. 1975년 충남 공주시 의당면 송정리의 절터에서 출토됐다. 일부분을 제외하고 금박이 뚜렷이 남아있는 등 문화재적 가치가 높아 1989년에 국보 제247호로 지정됐다.

미소를 띤 통통한 얼굴에 날씬한 신체, 머릿결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점이나 무릎을 살짝 구부려 움직이는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한 점 등 예술성이 뛰어나다.

또 옷 주름과 시원스럽게 흘러내리면서 교차하는 천의 자락, 낮지만 안정감 있는 연꽃 대좌 등이 매끄러운 표면 질감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더한다. 높이 25cm.

입상은 머리에 삼면관을 쓰고 있으며 관 중앙에는 불완전하지만 부처 형태가 새겨져 있다.

오른손에 연꽃봉오리를, 왼손에 불교의식에 쓰이는 병을 쥐고 있어 관음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강도들이 강탈한 청자상감포류문(靑磁象嵌蒲柳文)대접, 청자상감국화문고배형기(靑磁象嵌菊花文高杯形器)는 보령 앞바다에서 건진 고려시대의 유물.

또 분청사기인화문(粉靑沙器印花文)접시는 조선시대의 유물이다. 이들 유물은 일부에 금이 가거나 깨져있어 사료적 예술적 가치는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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