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경북지역 농촌노인 돌보는 '고향주부모임'

  • 입력 2003년 5월 23일 23시 34분


“농촌 어르신들 힘내세요.”

23일 오후 경북 구미시 사곡동 최복만 할아버지(86)의 낡은 집에 음료수를 든 주부 12명이 찾아왔다. 북한 출신인 할아버지는 가족은 물론 일가친척 한 명 없이 평생을 혼자 살고 있다.

이날 최 할아버지를 찾은 주부들은 농촌의 노인들을 돌봐주는 고향주부모임 회원들. 이들은 평소에도 복지시설 등에서 노인 봉사활동에 앞장서고 있지만 이달부터 농협경북지역본부에서 마련한 가정봉사 전문과정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을 찾아가고 있다.

“집을 찾아가 어른들을 돌보려면 꼼꼼하게 준비를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어른들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챙겨드려야 하고요. 청소하고 빨래를 해드린다고 무조건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마음을 편안하게 맞춰드리면서 하나씩 도와드리는 게 중요하죠.”

고향주부모임 경북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허현숙(許賢淑·54·구미시 송정동) 주부의 말이다. 허씨는 “시댁과 친정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농촌 어른들을 뵐 때마다 부모님 생각이 난다”며 “누군가 꼭 해야 될 일이기 때문에 형편이 되는 주부들이 나섰다”고 말했다.

농촌 인구가 줄어들면서 빨래 하나라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홀몸 노인’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자치단체와 정부가 생활비 등을 보조하고 있지만 청소와 빨래, 목욕, 손발톱깍기 등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농협경북지역본부(본부장 이연창·李淵昌)는 5월부터 가정봉사 전문가(헬퍼·도움 주는 사람) 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도움이 필요한 농촌 노인들을 위한 봉사를 체계적으로 해보자는 것. 교육을 수료한 구미 60명을 비롯해 경주 김천 영덕 상주 등 5개 시군에 주부 220명이 고향에서 노인돌보기에 나서고 있다. 봉사에 필요한 비용도 주부들이 직거래 장터 운영 등을 통해 마련하는 경우가 많다.

노인가정봉사에도 전문성이 필요하다. 치매 같은 질환이 있거나 성격이 특이한 경우가 있어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효과적인 봉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부들과 함께 봉사를 한 구미농협 김순애(金順愛·43) 여성복지 상무는 “혼자 사는 노인이 늘어나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가정봉사활동이 조직화 전문화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농협경북본부는 농촌 노인돕기 주부전문인력 양성을 도내 23개 시군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김인중(金仁中·54) 여성복지팀장은 “읍면동에 주부 봉사단이 거미줄처럼 퍼지면 농촌에서 혼자 사는 노인들에 대한 안전망 역할을 해낼 것”이라며 “도움을 주고받는 분위기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주부들이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미=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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