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선 수경스님…몸을 던진 비폭력 시위

  • 입력 2003년 5월 24일 16시 50분


사진:환경운동연합 제공
사진:환경운동연합 제공
서로 부둥켜 안았지만, 묵언 수행자의 눈에서는 소리없이 눈물만 흘렀다.

지난 3월 28일 전북 부안군 해창 갯벌(새만금)을 출발해 세걸음마다 한번씩 이마를 땅에 대고 절을 하는 삼보일배의 고행 57일째.

23일 오전 드디어 남태령 정상에 올라, 서울을 알리는 푯말을 옆에 두고 문규현(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신부는 휠체어에 앉은채 링거주사를 손등에 꽂은 수경(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스님을 부둥켜 안았다.

김제, 죽산, 군산, 서천, 아산, 천안, 평택, 수원, 과천을 지나 드디어 서울입성. 아스팔트의 열기와 매연 속에서 285㎞를 몸을 바닥까지 낮추고, 아예 말문까지 닫아버린 수행자들의 '비폭력 시위'는 보는 이들의 눈과 가슴에 평화와 생명의 메시지를 깊이 새기고 있다.

다음날인 24일 수경스님은 앉았던 휠체어마저 버린채 삼보일배 정진을 이어나갔다. 탈진으로 의식을 잃어던 그는 "오랜 고행으로 근육세포가 죽어가고 있으며, 피로가 누적되면 녹내장이 악화돼 실명할 위험도 있다"는 의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참회와 속죄의 길을 나선 것이다.

그래서일까, 전날 200여명이던 삼보일배 행렬에는 서울 보라매공원을 목표로 진행된 58일째 수행길에 무려 800여명의 시민들이 함께 참여했다.

몸을 낮추고 말을 하지 않을수록 이들의 주장은 더욱 더 큰 울림으로 '목소리와 힘만을 의지한 주장들'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삼보일배 수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참회와 시위의 방법이자 수행의 또 다른 모습인 삼보일배는 이미 2001년 5월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에 의해 서울 한복판 명동성당에서 선보였다. 명동성당에서 청와대까지의 기도수행은 새만금 갯벌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2002년 11월 스페인 발렌시아 람사협약 회의장 주변에서 새만금 갯벌과 전 세계 습지를 구원하기 위한 삼보일배를 시행하기도 했다. 전 세계 NGO 대표들이 경탄을 금치 못했음은 물론이다.

삼보일배 수행단은 24일 보라매공원에서 휴식을 취한 후 25일 여의도에 도착해 '새만금 갯벌의 생명평화 기도회와 시민대회를 연뒤 다시 신촌, 아현, 서대문, 명동성당 등을 거쳐 31일 광화문과 정부종합청사에 도착할 예정이다.

▼삼보일배는 무엇이며, 이들은 누구인가▼

삼보일배 수행이란 티베트 승려들이 카일라스 성산(聖山)을 향해 오체투지(五體投地)로 나아가는 것으로 잘 알려진 불교의 전통적 수행방법. 이마에서 양 무릎까지 자신을 최대한 낮추는 광경은 보는 이를 숙연하게 만든다.

실제 상황 역시 살인적이다. 간척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전북 부안의 해창 갯벌에서 시작하여 서울 광화문까지 305km를 60일간 세 걸음에 한 번씩 온몸으로 천지에 경배하며 행군한다. 하루 5km, 대략 3000배를 마쳐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 가히 세상의 죄를 대신 씻기 위한 수도자만이 상상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고행의 극치다.

이를 생각하고 몸으로 실천한 이는 30년간 선방수좌였고 근래에 불교환경연대를 이끄는 수경 스님과 1970년대부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활동으로 널리 알려진 문규현 신부(57). 문신부는 1990년대 중반 부안 요촌성당에서 주임신부로 일하며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과 인연을 맺은 이후 앞장서서 이 간척사업의 중단을 주장해왔다.

수경 스님과 문신부의 고행은 새만금 논란에 대한 각성과 결자해지에 나서야 하는 정부의 결정권자들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절규인 셈이다.

최건일 동아닷컴기자 gaego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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