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씨 긴급체포…北송금 대출과정 직권남용혐의

  • 입력 2003년 5월 28일 18시 32분


‘대북송금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송두환(宋斗煥) 특별검사팀은 28일 밤 이기호(李起浩)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2000년 6월 산업은행의 현대상선에 대한 4000억원 대출 과정에서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혐의(직권남용)로 긴급체포했다.

이 전 수석은 24일 구속된 이근영(李瑾榮) 전 금융감독위원장에 이어 두 번째로 사법처리 대상이 됐다. 특검팀은 이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특검팀은 이날 이 전 수석을 상대로 산은의 현대상선에 대한 4000억원 대출 직전인 2000년 6월3일 롯데호텔 비공식 조찬간담회와 이후 수차례 전화통화를 통해 이근영 당시 산은 총재에게 대출을 요청한 경위 등을 추궁했다.

특검팀은 또 이 전 수석이 한광옥(韓光玉)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해 청와대 인사들로부터 현대상선 등에 대한 대출을 도와주도록 지시받거나 대출금이 ‘북 송금’ 자금으로 사용될 것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를 집중 조사했다.

이 전 수석은 그러나 이날 특검 조사에서 “당시 대출은 현대의 유동성 위기를 고려한 정책 판단이었을 뿐 대출금이 대북송금 자금으로 사용될 줄은 전혀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근영 전 금감위원장은 이날 서울지법에서 열린 구속적부심에서 “당시 이기호 수석과 한광옥 비서실장의 전화를 받고 이는 청와대의 뜻이라 생각해 대출을 승인했다”며 “김충식(金忠植) 당시 현대상선 사장이 대출을 신청하러 왔을 때도 ‘정부에서 가보라고 해서 왔다. 청와대에서 연락받았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이는 현대의 대북송금이 청와대의 주문에 의한 정상회담 대가였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특검팀은 이에 따라 29일 이근영 전 금감위원장을 다시 소환, 이기호 전 수석과 대질신문을 벌일 방침이다.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민형기·閔亨基 부장판사)는 이날 이 전 위원장이 신청한 구속적부심을 기각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김재영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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