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나무]<9>'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영남대교수

  • 입력 2003년 6월 2일 18시 39분


영문학도이자 문학평론가로 녹색운동에서 참 지성의 길을 발견한 김종철교수는 거의 혼자의 힘으로 ‘녹색평론’을 꾸려오고 있다.-대구=김형찬기자
영문학도이자 문학평론가로 녹색운동에서 참 지성의 길을 발견한 김종철교수는 거의 혼자의 힘으로 ‘녹색평론’을 꾸려오고 있다.-대구=김형찬기자
《1970∼80년대 촉망받던 문학평론가에서 녹색운동가로 변신해 1991년 ‘녹색평론’을 창간하며 한국 녹색운동의 새 지평을 연 영남대 김종철 교수(56·영문학.사진). 녹색운동 계열에서도 가장 ‘래디컬(radical)’하다는 평을 듣는 그는 산업사회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기능화한 한국사회의 지식인들에게 지성인의 책무와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그가 서울대 영문과 4학년에 재학 중일 때였다. 합동연구실 서가에서 우연히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의 시집을 뽑아 들었다.

“주인집 대문 앞에 굶주려 쓰러진 개는 제국의 멸망을 예고한다.”

“감옥은 법률의 돌로, 창부의 집은 종교의 벽돌로 세워진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신성한 존재이다.”

시라기보다는 잠언 같은 강력한 울림이었다. 블레이크의 시는 영적 체험과 비범한 상상력으로 문명사회의 인간에 대한 근본적 도전을 단행하는 메시지였다. 기본적으로 문학도인 김 교수는 블레이크를 “카를 마르크스 이전에 마르크스보다 더 철저하게 자본주의 산업사회를 근본에서부터 비판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블레이크는 그의 대학 졸업논문 주제가 됐고 석사학위 논문의 주제 역시 블레이크였다.

그가 보기에 블레이크는 그저 ‘진보적’인 예술가가 아니라 래디컬한 사상가였다. 블레이크는 유럽 6000년의 역사가 출발부터 억압적 체제였음을 꿰뚫어 본 ‘아나키스트’였다. 그는 주류문화의 변두리에서 면면히 이어져온 신비주의 전통과 급진적 민중사상을 결합하여 성경을 비롯한 유럽문화의 기본적 텍스트를 완전히 새로 해석했다. 그는 예수야말로 가장 완전한 ‘지성적’ 인간이며, 예수의 행동 원리는 직관과 충동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일반적으로는 젊은 시절에 진보적이었다가 점차 보수적으로 되지만 나는 도리어 나이가 들면서 더 래디컬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회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이 점점 더 근본을 파고들어 갔을 뿐 아니라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현실에 대해 더 본질적인 변화를 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녹색평론’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눈다. 그만큼 ‘녹색평론’은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991년 말 대학원생 몇 명의 도움을 받아 격월간지로 창간한 ‘녹색평론’은 현재까지 단 한 번의 결호도 없이 총 69호가 발간됐다.

‘녹색평론’은 일반적으로 환경운동 잡지로 알려져 있지만 김 교수는 ‘녹색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종합잡지’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파편화된 전문지식의 협소한 틀에 갇힌 지식인들이 범람하는 시대에 사회와 세계 전체를 볼 수 있는 사고의 폭과 깊이를 갖도록 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1980년대에 그는 문학이 갈수록 삶의 근본문제에 대처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문학평론이 서구이론에 함몰돼 가는 현실을 보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할 필요를 느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녹색평론’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지금 ‘녹색평론’의 발간 작업도 여전히 문학활동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녹색운동에 대한 그의 관심은 1975년 대전 숭전대(현 한남대)에 전임으로 부임하면서 희미하게나마 시작됐다. 20대 후반의 젊은 교수였던 그는 대전 주변 농촌 출신의 ‘늙은’ 학생들과 가깝게 지내며 우리 삶의 기반인 농촌과 농업이 쇠퇴일로에 있는 현실에 눈을 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문학평론가로 명망을 쌓고 있었고, 그 후 1983년에 뒤늦게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면서 중요한 전기를 맞게 됐다.

그는 은사인 김우창 선생의 소개로 뉴욕주립대(버펄로)의 미국학 연구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이 학과에서는 남미의 군사독재 국가에서 쫓겨 온 망명 지식인, 인디언 추장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며 다양한 실천적 사회운동을 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한창 일을 해야 할 나이에 학위증명서 하나 받겠다고 남의 나라에 와 있는 자신이 초라하고 부끄러웠고, 결국 1년도 못 채우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귀국 직후 그는 병원에서 갑상샘에 종양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수술을 받기까지 1년 반 동안 요양생활을 하며 인도의 고대철학을 비롯한 종교 관련 책들을 읽고 버펄로에서 미국 인디언들과 사귀면서 얻은 자료들도 다시 꺼내 봤다. 독일 녹색당의 창립멤버인 루돌프 바로(1935∼1997)의 저서인 ‘대안(The Alternative)’을 골똘히 읽은 것도 이때였다. 동독 공산주의 치하에서 쓰인 이 책은 현실 사회주의뿐만 아니라 서구 자본주의 체제도 부정하면서 근본적 문화혁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었다. 대개의 진보적 지식인처럼 한때 마르크스주의의 ‘진리성’을 신봉했던 김 교수는 이 무렵에 이르러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연이어 동구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면서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좌절하고 방황했다. 그러나 민주화라는 시대적 과제가 어느 정도 해결의 기미를 보이는 새로운 상황에서 김 교수는 이제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투쟁, 즉 근대적 산업사회의 논리에 대한 투쟁의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고 고심 끝에 ‘녹색평론’을 창간했다.

김 교수는 작년 말을 울적하게 지냈다. 12월2일 그가 가장 많은 지적 부채를 지고 있다고 생각해온 철학자 이반 일리치(1926∼2002)가 타계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철학자이자 역사가, 시인이자 가톨릭 신부였던 일리치는 현대사회가 전면적이고도 근본적으로 잘못돼 있다는 것을 가장 철저하게 인식한 지식인이었다. 일리치는 ‘탈학교 사회’ ‘의학의 한계’와 같은 저서를 통해 토착 전통사회가 누리고 있는 ‘자급적 삶의 방식(subsistence)’에 대한 공격과 파괴의 역사가 바로 근대화 서구화의 역사이며, 그 결과 문화적 다양성의 파괴, 지속불가능한 문명의 확대, 전 지구적인 생태의 파국이 초래됐음을 보여줬다.

그런데 일리치의 논리도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마하트마 간디(1869∼1948)는 20세기 초에 이미 서구 문명이 인류사회에 큰 재앙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간디는 1909년 저서인 ‘힌두 스와라지’에서 사회적 약자와 자연을 끝없이 침탈할 수밖에 없는 서구식 산업문명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자급자족적 마을 중심의 자치적 민주주의 사회라고 주장했고, 평생 직접 물레를 돌려 옷을 지어 입었다.

김 교수는 1999년에 발간한 저서에 그 정신을 기려 ‘간디의 물레’란 제목을 달았다. 김 교수는 근대 산업문명이 재생불가능한 화석연료를 기초로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의 길로 들어섰고, 중앙집중적 권력체제를 강화하는 발전과 성장의 논리에 의존함에 따라 인류가 결국 ‘집단자살 체제’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자본과 민족이라는 낡은 시대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계급, 인종, 성별, 지역에 관계없이 서로 돕고 사는 이웃사람들로 구성된 작은 민주적 공동체들이 세계 곳곳에서 ‘들꽃’처럼 피어날 때 구원의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그는 실제로 그런 삶의 방식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 방학이면 늘 가서 지냈던 외할머니네 마을, 그 가난하고 소박하지만 대부분 자급자족하면서 서로 보살피며 살아가던 작은 농촌마을의 ‘행복한’ 모습이 늘 마음속에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가 ‘녹색평론’의 이념으로 늘 얘기하는 ‘고르게 가난한 사회’는 바로 이런 이미지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녹색평론' 창간사 중에서 ▼

“환경재난이 제기하는 보다 근원적인 물음으로부터 자꾸만 도피한다면, 모처럼 이 위기가 인간의 자기쇄신이나 성숙을 위하여 제공되는 진정한 도전에 성실하게 응답하지 못하는 결과가 될 것이 틀림없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전대미문의 이 생태학적 재난은 결국 인간이 진보와 발전의 이름 밑에서 이룩해온 이른바 문명, 그 중에서도 특히 서구적 산업문명에 내재한 논리의 필연적인 결과로서의 사회적, 인간적, 자연적 위기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사람이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지구상에서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 올바른 방식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할 것을 요구하는 진실로 심오한 철학적, 종교적 문제에 직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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