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스케치]서울도심의 분수

  • 입력 2003년 6월 6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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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4시경, 서울 종로구 혜화동 로터리 분수대. 초여름 무더위를 뚫고 시원한 물줄기가 솟구쳐 올랐다. 로터리 버스정류장에서 대학생들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분수가 밋밋하고 촌스러운 것 같아.” “분수 바로 옆으로 고가도로가 지나갈 건 뭐니, 볼품이 없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분수가 가동되고 있다. 시청 앞, 세종문화회관 뒤, 남산공원 등. 그러나 분수나 물줄기의 모양은 단순하고 천편일률적이다. 대개 1m 높이로 둥글게 물을 담는 수조(水槽)를 만들고 그 안에 노즐을 설치했다. 그저 물만 뿜어 올릴 뿐, 수조의 외관이나 물줄기에서 미적인 면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분수는 가동되지 않을 때는 도시 미관을 해치는 장애물로 전락한다. 사람들은 여기에다 ‘부담 없이’ 쓰레기나 담배꽁초를 버리기도 한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옆 한강의 월드컵분수대도 별 매력은 없다. 세계 최고 높이인 202m까지 물줄기를 뿜어 올리지만 거대할 뿐 아름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분수는 단순히 물을 뿜어 올리는 장치가 아니다. 조형미가 넘치고 거리와 어울리는 예술품이어야 하며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어 주어야 한다.

중구 남대문로 신세계백화점 앞의 분수. 여기엔 대리석과 청동제 조형물이 마련돼 있다. 분수가 가동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조형물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조형물 덕분에 물줄기의 방향이 다양해져 비교적 생동감이 넘친다.

하지만 조형물이 문제다. 사람들이 어울려 만세를 부르거나 앞으로 나가려는 모습이 애국지사 동상인 듯 부담스럽다.

조각가 이종빈씨는 “신세계백화점 앞도 그렇고 국립극장 분수의 군무(群舞) 인물상도 판에 박혀 있고 권위적인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 앞엔 ‘움직이는 예술품’으로 된 분수가 있다”면서 “서울의 분수도 이처럼 참신하고 경쾌하며 창의력 넘치는 조형물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엔 음악분수가 생기고 있다. 2000년 덕수궁 돌담길에 작은 음악분수가, 지난해 말 예술의 전당에 세계음악분수가 등장했다.

5일 오후 6시 반 예술의 전당 음악분수 앞엔 수백 명의 시민이 모였다. 대형 수조(가로 43m, 세로 9m)에 설치된 800여개의 노즐은 음악 소리의 강약 고저에 따라 물줄기의 높이와 모양을 다양하고 현란하게 연출했다.

분수 뒤편 스크린에는 실내 공연 모습도 상영됐고 사람들은 분수에서 튀는 물방울을 맞으며 동심의 세계에 흠뻑 젖었다. 음악과 물줄기 모양을 좀 더 정교하게 어울리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이곳은 서울의 명소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유명한 관광명소인 이탈리아 로마의 트레비분수(18세기). 이 분수의 명성과 매력은 물줄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화려한 바로크양식의 조각과 궁전이 배경을 이룬다는 점, 사람들이 분수 바로 앞까지 다가갈 수 있다는 점, 이것이 진정한 매력이다.

이르면 내년, 서울시청 광장이 조성되고 음악분수가 등장한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도 수백만 명의 관광객과 시민을 끌어 모으는 ‘트레비분수’가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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