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에이지’ 장르의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이루마는 요즘 젊은층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작곡가 겸 연주자다. 5월 내한 공연 때도 표가 매진됐다. 그는 자신이 직접 쓴 간단한 시에 곡을 붙이거나 사랑의 기다림 등을 주제로 작곡해 온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 지난해 말 한 통신업체의 TV 광고에 나오면서 앳되고 깔끔한 외모 탓인지 10, 20대 여성 팬들이 급격히 늘었다.》
그런 그가 이날은 환경을 위해 야외무대에 섰다. ‘환경의 날’을 맞아 세계적인 영국의 보디용품점 ‘바디샵’ 코리아가 그를 환경대사로 임명하고 환경 캠페인을 부탁해온 것. ‘바디샵’의 환경 대사는 지난해 재미(在美) 한국인 클래식 연주자인 세 자매 ‘안 트리오’에 이어 그가 두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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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하고 싶었던 일인데 기회가 주어져서 신나요. 자연친화적인 음악을 하다 보니 환경에도 관심이 많았거든요. 이런 음악은 공해와 소음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을 치료하는 힐링 파워(healing power·치유력)도 있어요.”
여학생 팬들로부터 “마음이 편해지고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말을 듣는 그의 곡들은 영감의 대부분을 자연에서 얻는다. 차고를 개조한 영국의 작업실은 푸른색 정원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3면이 통유리로 돼 있어서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으면 여우나 다람쥐가 연습실 근처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루마가 편곡한 ‘겨울연가’의 로맨틱한 테마도 알고 보면 환경과 관련이 있다. ‘누가 할머니(자연)를 데려갔을까’라는 원제의 이 곡은 ‘새들이 날아가고 불도저가 들어오네’라는 노랫말로 알려진 프랑스 샹송.
그는 “녹색평론 같은 잡지를 정기구독하며 환경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주말이면 아버지와 함께 직접 쓰레기 소각장에 가서 색깔별로 병을 분리 수거했던 생활도 몸에 배어있다고 했다.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본산지인 영국에서 경험한 각별한 환경 보호 의식과 문화도 영향을 미쳤다.
영국에서 손해사정인으로 일하고 있는 아버지 이경희씨(57)는 그가 유학 간 지 2년 뒤에 아예 가족을 데리고 영국으로 이민해 그와 합류했다.
“쓰레기를 줍고 띠를 두른 채 시위하는 것만이 환경운동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즐겁고 신나게 환경 운동을 하고 싶어요. 자연과 가까운 음악을 통해 사람들이 환경에 더 많은 애정을 느끼도록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는 거리에서 환경 콘서트를 열거나 공연으로 벌어들인 돈을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것 등이 자신이 우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환경과 음악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앞으로 계속 고민할 거예요. 좋은 음악을 만들려면 영감을 불어넣어줄 아름다운 환경이 필요하잖아요. 그 음악이 듣고 싶은 사람은 자연을 아껴달라는 얘기지요. 앞으로는 이 메시지를 콘서트 때마다 전할 거예요.”
흥분으로 들뜬 모습이 언뜻 개구쟁이 소년을 연상시켰다. 그는 2001년 한국에서 가진 첫 연주회에서 앙코르 박수를 받자 즉흥적으로 만화주제가 ‘캔디 캔디’를 연주하는 장난기를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음악 실력에 있어서는 전문가 특유의 자신감이 넘친다. 이루마는 영국의 음악 전문학교인 퍼셀스쿨과 런던대 킹스칼리지에서 작곡 수업을 받았다. 현대음악의 대부로 알려진 해리슨 버트뤼슬을 사사했다. 지난해 프랑스 칸에서 열린 세계적 규모의 음반 박람회 ‘미뎀(Midem)’에서 한국인 피아니스트로는 처음 초청돼 공연했다.
국내에서는 얼마 전 도쿄 애니메이션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클레이 애니메이션 ‘강아지똥’의 음악 감독을 맡았고, 영화 ‘오아시스’를 본 느낌을 담아 이미지 앨범도 냈다. 지난해 TV 광고에 출연할 때에는 독일의 전문 피아노 회사인 ‘슈타인웨이 앤드 선스(Stainway&Sons)’로부터 시가 1억2000만원짜리 새 그랜드 피아노를 무상으로 지원받기도 했다. 이루마의 실력에 대한 외국 음악 전문업체들의 평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5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11세에 영국에 유학해 인종과 언어문제를 극복한 그는 이제 세계를 향해 비약할 채비를 하고 있다. 이미 일본과 홍콩 등 아시아 5개국에서 그의 솔로 앨범이 팔리고 있고, 올 가을과 내년 초에는 유럽과 미국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제 이름이 외국 이름 같지만 사실 ‘뭔가를 이루라’는 뜻에서 부모님이 지어주신 순 한국말 이름이에요. 9월에 대학원에 들어가면 작곡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제 이름에 맞는 사람이 되도록 할 겁니다.” (그에게는 위로 누나가 둘 있는데 누나들의 이름도 ‘이루다’ ‘이루지’이다.)
벌써 자신의 음악세계를 일궈냈다는 평을 듣는 이 젊은이는 환경 캠페인 외에 소외된 이웃들에게도 눈을 돌리고 있다.
7월 수원에서 열릴 예정인 소년소녀 가장들을 위한 무료 연주회는 그런 활동 중의 하나. “내가 가진 것을 좀 더 큰일을 위해 쓰고 싶다”는 그의 마음이 아름다웠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이루마는…▼
-1978년 서울 출생
-1989년 영국 유학
-1997년 영국 퍼셀스쿨 피아노와 작곡 최고연주자과정 졸업
-2000년 런던대 킹스 칼리지 작곡과 졸업
-2000년 한영 친선문화교류 기념 런던 서울 공동제작 연극 ‘태’ 음악 담당
-2001년 5월 국내 첫 앨범 ‘러브 신(Love Scene)’ 발매
-2002년 프랑스 칸 미뎀 ‘코리안 뮤직 나잇’ 초청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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