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의 경우 내 마음 속의 아버지는 사랑보다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집에서나 유독 아버지만은 엄한 권위의 상징처럼 아이들의 생활을 규율하고 훈계하는 존재였음을 부인할 수 없으리라. 장판방을 쓸어내는 빗자루인 개꼬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분도 늘 아버지였고, 글은 안 읽고 날마다 강가에 헤엄만 치러 다니다가는 ‘인 안 된다(사람 안 된다)’고 꾸중하시는 분도 아버지였다.”
할아버지의 엄격함에 대한 아버지의 반발이 성장기의 나에겐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었다. 그래서 난 다른 친구들과 달리 공부를 안 해도 또 못된 짓을 해도 아버지로부터 엄한 꾸중을 듣지 않았다. 그러나 딱 한 번 아버지의 속내가 드러난 경우가 있었다. 중학생 시절 당시 유행하던 통기타가 배우고 싶어 학교를 마치면 친구들과 방에서 뚱땅거릴 때였다. 난생 처음 아버진 공부 안하며 기타만 쳐대는 내 모습에 대한 실망을 엄청난 분노로 질타하였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변신에 심한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 그런 아버지의 관심 덕택에 난 삶의 기율이랄까 절도에 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곤 이제 내가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자식에게 전기기타를 사주며 공부도 잘 해야 한다는 소릴 빼놓지 않고 있다. 결국 ‘자식이 아버지 된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또한 당신 동료들이 기억하는 친밀함과 당신 가족들이 지켜야 했던 엄격함 사이에 존재하여 온 팽팽한 긴장이 오늘의 나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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