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주진숙/한국영화 보호기간 더 필요

  • 입력 2003년 6월 18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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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의무상영제도인 스크린쿼터제가 한미투자협정(BIT) 체결을 지연시키는 주범으로 몰려 연일 질타를 받고 있는 시점에서 6월14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조희문 상명대 교수의 문화칼럼 ‘스크린쿼터가 필요한가’를 읽었다.

조 교수는 “한국 영화의 약진은 기획 제작자의 노력과 극장 서비스의 향상, 관객의 지지가 합쳐진 결과이지 스크린쿼터제 때문이 아니다”라고 했다.

먼저 1985년 외국영화 수입자유화 이후 최근까지 한국영화는 서서히 발전해 왔고 ‘쉬리’ 이후 한국영화산업의 외양은 발전의 정점에 온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재능 있는 영화인들의 기획력과 관객의 지지도 중요했지만 한국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초석은 스크린쿼터제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스크린쿼터제가 없었거나 미미한 수준이었다면 한국 영화의 배급은 할리우드영화 직배사들의 거대한 위협 아래 축소되었을 것이며 제작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위축되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또한 조 교수는 글 말미에 ‘한국영화는 이제 기대 이상으로 성장했다고 할 만하지 않은가’라고 묻는다. 이 정도 성장했으면 됐다는 뜻이리라.

왜 한국영화는 이만큼만 성장해야 하는가. 현재 한국영화의 제작 투자는 위축되고 있고 잘 만들어진 영화들을 관객이 선택할 기회는 박탈당하고 있다. 유능한 감독이라도 영화 한 편을 만들 기회는 2∼3년에 한 번뿐이다. 제작진 대부분은 여전히 생계가 불안정하다. 한국영화의 역사에서 이나마 이룬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제대로 성장한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제대로 성장한 것으로 보이던 홍콩의 영화산업이 최근 쇠락의 위기에 직면한 현실을 남의 일로만 볼 수는 없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안정된 영화산업을 지닌 곳은 미국밖에 없다. 망상일지 모르지만 타문화에 대해 극히 배타적인 미국 땅에서 미국의 주요 배급망을 타고 미국영화들과 대등하게 우리 영화들이 상영되고 그리하여 미국 영화인들이 자국 영화의 보호와 확산을 위해 스크린쿼터를 만들자고 할 상황이 와야 우리 영화도 성장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조 교수는 ‘미국영화의 독점력이 예전 같지 않은’ 현실에서 스크린쿼터 논쟁은 공허하다고 주장한다. 미국영화의 독점력은 세계적이고도 긴 역사를 가진 ‘사실’이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영화 역사는 미국영화에 대한 시장개방으로 인해 허물어져가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한국영화의 최근 시장점유율은 미국영화의 독점력이 한국에서는 일시적으로 줄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 ‘일시적 약화’까지도 두려워 이젠 영상 및 음반산업을 대표하는 미국 기업들이 EIC(Entertainment Industry Coalition for Free Trade)라는 이익단체를 결성해 각국의 문화정책과 문화적 예외를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세계를 향해 문화전쟁을 선포하고 있는 실정이다.

스크린쿼터는 영화에서 시작된 제도지만 이젠 보다 넓은 문화영역으로 도입해 문화 주권을 확립하는 제도의 모태로 지켜질 필요가 있다. 경제전문가조차 “영화는 역사와 의식을 수출하는 문화이며 문화는 협상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현실 아닌가.

주진숙 중앙대 교수·영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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