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건은 겉으로 보기엔 ‘청년실업’이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대기업 직원 한 사람의 ‘개인비리’쯤으로 치부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의 파장이 날로 커지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취업사기가 가능한 여수 산단지역의 특이한 취업조건 때문.
시민들은 “멀쩡한 대졸자가 수 천만원을 일개 평사원에게 갖다 바치고 취업차례를 기다리는 음성적 특별채용 관행의 꼬리가 드러난 것”이라며 “이번 기회에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수 십 년간 이어 온 음습한 불법 부정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의 여수산단이 ‘여천석유화학공단’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70년대 초반.
당시로서는 생소한 분야인 장치(裝置)산업 관련 업체 수 십개가 한꺼번에 들어서면서 이 지역은 공해지역의 오명을 감수하는 대신 파격적 고액연봉의 취업기회라는 혜택을 누려온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상당수 업체들이 이 직원들을 모집하면서 공개경쟁방식보다 특채를 선호, 수 십 년에 걸친 ‘취업뒷거래’ 관행을 고착시켜 왔다는 것.
이번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고졸사원 연봉 수준이 국내 굴지의 대기업 신입사원 수준을 능가하는 이들 업체에 일자리를 얻기 위해 피해자들은 3000만원에서 많게는 5000만원까지를 회사 관계자에게 건넨 후 ‘번호표’를 기다려 왔다.
산단 사정에 밝은 한 회사원은 “뒷돈을 맡기면 언젠가 취업이 이뤄졌던 수많은 ‘선례’를 확인할 수 있는 이상 누군들 집을 팔아서라도 돈을 갖다 주지 않고 견딜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경찰은 이 같은 검은 거래 뒤에 기생하고 있는 공장 안팎의 배후를 캐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혼자서 4억원 넘게 챙겨 도주한 전 L화학 직원 H씨의 경우도 10여년 전 뒷돈을 주고 들어왔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떠돌고 있다”며 “범 시민운동 차원의 비리척결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 시민단체 대표는 “이번 사건은 근본적으로 의혹의 눈길을 무릅쓰고 비공개 채용을 고집해 온 업체들의 책임”이라며 “이번 기회에 이들 업체에 각종 편의와 압력을 무기로 채용압력을 행사해 온 외부 관련기관의 비리도 함께 해소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광주=김권기자 goqu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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