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발생 6년여 만에 여관 관리인을 살해하고 달아난 3인조 강도를 붙잡은 서울 동대문경찰서 이희식(李凞植) 경위는 24일 범인 검거의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6년여 전인 1996년 11월 오후 11시경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를 배회하던 김모(당시 16세), 이모씨(당시 18세) 등 10대 3명은 용돈 마련을 위해 서울 종로구 연지동의 한 여관을 털기로 마음먹었다.
손님으로 가장해 여관으로 들어간 김씨 등은 방 안에서 숙박부를 기록하는 척하다 갑자기 여관 관리인인 화교 담모씨(33·여)의 목을 조르며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깜짝 놀란 담씨는 비명을 지르며 이들을 뿌리치고 복도로 도망쳤고, 김씨 등은 담씨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화교인 남편 장모씨(당시 38세)의 가슴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오토바이를 타고 도주했다.
경찰은 범인들이 현장에 남기고 간 오토바이 헬멧, 볼펜, 흉기 등을 토대로 수사를 진행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숙박부에 남겨진 범인의 지문이 유일한 단서였으나 당시 10대였던 범인의 지문은 경찰에 등록돼 있지 않았다.
이후 수사는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았고 2001년 사건은 결국 미제 처리됐다.
그러나 미제사건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 온 이 경위는 올해 초 다시 이 사건 기록을 뒤지다가 범인들이 나이가 들어 지문을 등록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 당시 현장을 목격한 7세 소녀가 “나이가 많지 않은 오빠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쳤다”고 진술한 점에 착안한 것. 이 경위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2월 다시 경찰청에 당시 채취한 지문을 조회했다.
조회 결과 그 사이 성년이 된 범인 이씨의 지문이 등록되어 있었다. 이씨의 신원을 파악한 경찰은 4개월간의 추적 끝에 이들을 모두 검거했다.
이씨 등은 “범행 후 비 오는 날만 되면 당시의 기억이 되살아나 괴로웠다”며 “TV에서 범인들이 경찰에 붙잡히는 장면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안하고 늘 악몽에 시달렸는데 차라리 후련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24일 김씨 등을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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