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송금 특검 수사결과 발표]공소장 요지

  • 입력 2003년 6월 25일 18시 54분


《송두환(宋斗煥) 특별검사팀이 25일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과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 임동원(林東源) 전 국가정보원장을 기소하면서 공통적으로 적용한 혐의는 남북교류협력법과 구 외국환거래법 위반이다. 여기에 박 전 장관에게는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측에 대출을 해주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것에 대해 직권남용 혐의가, 정 회장에게는 분식회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과 구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가 추가됐다. 다음은 공소장 요약.》

▼박지원, 정상회담전 北에 4억5000만달러 지급 약속▼

박지원 전 장관은 2000년 3월 9일경부터 같은 해 4월 8일경까지 4회에 걸쳐 북한과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준비 접촉을 진행하던 중 같은 해 4월 8일 정부에서 1억달러, 현대측에서 3억5000만달러를 북한에 각각 지급하기로 약정한 뒤 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이어 박 전 장관은 같은 해 5월 중순 서울 모 호텔 객실에서 정부가 지급하기로 한 1억달러를 현대가 대신 지불할 것을 정 회장에게 요청했고, 정 회장은 이를 수락하며 4억5000만달러의 대북 송금 자금에 대한 정부 차원의 금융지원을 박 전 장관에게 부탁했다.

박 전 장관은 정 회장의 부탁에 따라 2000년 5월 말 국정원 별관에서 임 전 원장 등이 배석한 가운데 이기호(李起浩)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에게 현대에 대한 자금 지원을 지시했고 이 전 수석은 이후 이근영(李瑾榮) 전 금융감독위원장, 박상배(朴相培) 전 산은 부총재 등에게 주문해 2000년 6월 산업은행측에 회수 가능성이 없는 4000억원을 현대에 대출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박 전 장관은 또 정 회장, 임 전 원장 등과 공모해 2000년 5월 현대가 북한과의 경협에 관해 체결한 잠정 합의의 대가 명목으로 같은 해 6월 4억5000만달러를 관계 장관의 승인 없이 북한측 계좌에 송금한 데 개입한 혐의도 받고 있다.

▼정몽헌, 産銀대출 4000억중 2235억 회계조작 지시▼

정몽헌 회장은 김충식(金忠植) 전 현대상선 사장과 박재영(朴在榮) 현대상선 전무에게 “2000년 6월 산은에서 대출받은 4000억원 중 2235억원을 북한에 송금한 내용이 회계자료상 나타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김 전 사장과 박 전무는 2001년 3월 초 현대상선에 대한 2000년도 재무제표를 작성하면서 2235억원 중 2170억원을 유조선 1척과 자동차운반선 2척을 구입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65억원을 운항비로 사용한 것으로 기재했다.

현대는 이같이 허위로 작성한 재무제표를 2001년 3월 31일 금융감독위원회에 제출했고 같은 해 4월 12일 이를 금감원 전자 공시 시스템에 게재했다.

정 회장은 또 관계 장관의 승인 없이 2000년 5월 3일 현대아산을 통해 북한 통천지역 경공업 지구, 비행장 건립 등의 개발 운영권을 취득하는 등의 내용으로 대북 경협 사업에 관해 잠정합의안을 체결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한편 정 회장에게는 현대상선 대출금과 현대건설 자금 1억5000만달러를 포함해 모두 4억5000만달러를 북한에 송금하는 데 적극 개입한 혐의도 추가로 적용됐다.

▼임동원, 국정원 통해 현대자금 환전-北계좌에 송금▼

임동원 전 원장에 대한 공소장에는 4억5000만달러의 대북 송금 과정과 현대의 경협 합의안 체결 내용이 자세히 드러나 있다.

임 전 원장은 국정원 직원들에게 현대상선 자금을 달러로 환전해 북한측 계좌로 송금하라고 지시했다.

이들은 2000년 6월 9일 서울 소재 모 커피숍에서 김충식 전 사장 등으로부터 2240억원과 북측 수취인 계좌를 건네받고 이 중 2235억원을 외환은행을 통해 2억달러로 환전, 중국은행 마카오지점에 개설된 북측 3개 계좌로 송금했다.

임 전 원장은 이와 함께 2000년 5, 6월 대북 경협 사업에 관해 현대가 체결한 잠정합의안에 따라 2000년 6월 9일부터 12일까지 모두 4억5000만달러의 대북 송금을 주도한 혐의도 받고 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특검팀 발표문 작성 신중 또 신중▼

25일 수사결과 발표에 앞서 23, 24일 이틀간 특검팀 관계자들은 새벽까지 발표문 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송두환(宋斗煥) 특별검사도 ‘70일간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시종일관 굳은 표정이었다. 특검팀이 준비한 수사결과 발표문에는 곳곳에서 고심한 흔적이 발견됐다.

송 특검은 이날 발표에서 사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돈의 성격에 대해 “정상회담과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신중한 표현을 사용했다.

특검팀은 사전 배포한 발표문에서 “이 사건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이 지양되길 희망한다”고 2차례나 언급했고, 송 특검은 결과 발표에서 같은 표현을 2차례 더 사용했다. 송 특검이나 다른 특검팀 관계자들 모두 수사 결과 발표가 초래할 정치적 파장을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또 특검팀은 기소된 사람들의 공소장에서는 돈의 성격에 대해 “현대가 경협사업의 대가 ‘명목’으로 송금한 것”이라고 표현, 송금에 ‘숨은 목적’이 있었을 가능성을 열어 뒀다. 하지만 발표문에는 단순히 “경협사업의 대가로 송금”이라고 표현, 확대 해석을 막으려는 의도를 내비치기도 했다.

송 특검은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개입 여부를 묻는 질문에도 확답을 피한 채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지 않느냐”며 “앞으로 재판 변론 과정에서 일부 드러나는 게 있을 것”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특검팀 관계자는 “특검이 수사기간 종료로 범죄입증에 충분한 증거를 수집하지 못한 채 기소하면 자칫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며 아쉬워했다. ‘수사가 미완’으로 끝난 것에 대해 많은 특검팀 관계자들은 이 같은 반응을 나타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특검 70일 뒷 얘기▼

70일간의 대북 송금 특검 수사는 많은 뒷이야기를 남겼다. 대북 송금 사건이 첨예한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탓이다.

우선 소환된 거물급 인사들이 벌인 ‘기자 따돌리기’는 할리우드 영화를 연상케 했다.

이익치(李益治) 전 현대증권 회장은 소환 조사를 받고 나갈 때마다 특검 사무실 앞 8차로 도로를 무단 횡단해 기자들을 따돌렸다. 김충식(金忠植) 전 현대상선 사장은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기자들을 피하기 위해 조명이 꺼진 캄캄한 계단을 15층에서 1층까지 걸어 내려오기도 했다. 이근영(李瑾榮) 전 금융감독위원장은 긴급체포 후 구치소로 이감되느라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TV 카메라를 피하기 위해 얼굴을 벽 쪽에 바짝 붙였다.

국가정보원은 수표에 배서한 직원들이 소환될 때 ‘가짜 소환자’들을 동원해 007작전을 펼쳤다가 특검팀과 취재진에게 거센 항의를 받았다.

소환된 인사들의 ‘말잔치’도 입소문을 탔다.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인용한 조지훈의 시 ‘낙화’ 앞 대목은 유행어가 되다시피 했다. 한광옥(韓光玉)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한광옥이 죽어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수모를 벗을 수 있다면 기꺼이 그 길을 가겠다”고 했고, 이기호(李起浩)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내가 십자가를 지겠다”고 말하는 등 ‘충성’ 발언도 이어졌다.

김종훈(金宗勳) 특검보가 브리핑 도중 “이번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생각하자”며 눈시울을 붉힌 일도 화제를 모았다. 보도경쟁이 과열되면서 일부 신문이 미확인 내용을 대서특필한 데 대해 국익을 고려하자며 호소한 것. 특검 수사기간 연장 여부가 정치쟁점이 되면서 특검 사무실(서울 강남구 대치동 H빌딩) 앞은 수사 중단과 수사 연장을 요구하는 시위가 연일 벌어졌다. 보도진 100여명이 몰리면서 빌딩 주변 음식점들은 ‘특검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대북 송금 의혹사건’ 특검 일지▼

△2000년 3월=박지원-송호경 남북정상회담 예비접촉

△4월 8일=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 우리 정부와 현대, 북측에 각각 현금 1억달러와 3억5000만달러 지급 약정

△5월 중순=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현대 정몽헌 회장에게 1억달러 대신 지급 요청

△6월 3일=이기호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이용근 전 금융감독위원장, 이근영 전 산업은행 총재, 현대 지원 논의 후 이 전 수석, 산은에 대출 지시

△6월 9∼12일=현대, 4억5000만달러 북한에 송금

△6월 13∼15일=남북정상회담

△2002년 3월 25일=미 의회조사국 래리 닉시, ‘현대 8억달러 대북 지원설’ 제기

△10월 14일=감사원, 산은 특별감사 착수

△2003년 2월 3일=대검, 수사유보 결정 발표

△2월 14일=김대중 전 대통령, 대북 송금 국민 담화 “사법심사 대상 적절치 않다.”

△2003년 3월 15일=노무현 대통령, 특검법 공포

△4월 17일=송두환 특검팀 수사 착수

△5월 23일=이근영 전 금감위장 구속

△5월 31일=이기호 전 수석 구속

△6월 17일=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박 전 장관에게 150억원 상당 양도성예금증서(CD) 건넸다”고 진술

△6월 18일=박 전 장관 구속

(뇌물수수 및 직권남용 혐의)

△6월 20일=특검, 청와대에 수사기간 연장승인 요청서 제출

△6월 23일=노 대통령, 수사기간 연장 승인 거부

△6월 25일=특검수사 종료, 수사결과 발표.

대북 송금 정상회담 대가성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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