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완씨 前운전사가 말하는 현금수송 상황

  • 입력 2003년 6월 30일 06시 56분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시간, 인적이 드문 아파트 이면도로, 휴대전화를 이용한 짤막한 지시, 점조직 형태의 역할 분담, 48억원의 현금이 든 괴박스….’

김영완씨가 검은돈이 든 박스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신의 집으로 옮기는 과정은 마치 갱영화의 한 장면처럼 극비리에 진행됐다.

김씨의 전직 운전사 3명은 29일 본보와 한 단독 인터뷰에서 현금 수송 과정과 베일에 가려진 김씨의 행적을 소상하게 털어놨다. 신분 노출을 막기 위해 말한 사람의 이름은 생략했다.

―돈을 어떻게 옮겼나.

“사모님이 휴대전화로 전화를 해서 ‘강남구 압구정동 한양 아파트 뒤편 이면도로로 승합차를 몰고 가서 회장님을 만나라’는 이야기만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차량 통행도 거의 없고 인적도 드물었다. 해가 진 뒤라 주위가 어두웠다. 도로 한 쪽에 있던 김영완 회장은 휴대전화로 ‘접선’할 차량을 알려줬다. 그쪽에서는 2명이 나왔는데 말할 필요도 없고 할 말도 없고 그래서 짐만 날랐다. 뭔가 나쁜 일을 하는 것 같은 생각에 물증을 남긴다는 생각으로 나중에 차량번호와 두 사람 인상착의를 적었다. 오히려 화근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나중에 찢어버렸다. 흰색 상자에는 아무런 상표도 붙어 있지 않았고 청테이프로 단단히 봉해져 있었다. 박스를 날랐던 사람한테 들어보니 3억원이 들어간다고 하더라. 얼마나 무거웠는지 짊어지면 어깨에 피멍이 들고, 안으면 두 팔에 피멍이 들었다. 애들 통학시켜 주고 하던 7인승 승합차에 16개를 실었더니 가득 차더라. 얼마나 무거운지 차체가 타이어에 닿을 정도로 내려앉았다. 집에 옮겨다 놓은 뒤에는 바로 퇴근했다. 짐을 싣고 온 사람이 집안까지 옮기는 게 보통인데 사모님이 그냥 퇴근하라고 하더라. 박스의 출처를 아는 사람은 보관 장소를 모르게 하고, 보관 장소를 아는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게 하려고 (김 회장이) 역할 분담을 시킨 것 같다.”

―몇 번이나 옮겼나.

“1999년 늦가을에 한 번 하고, 2000년 초여름에 같은 방식으로 한 번 더 심부름을 했다. 지나고 나서 들어보니까 같이 근무하는 B씨도 1999년 가을과 그 다음해 초여름 사이에 두 번 옮겼다고 들었다. B씨는 한 번은 승합차가 가득 찼고, 한 번은 10개 정도 옮겼다고 했다. 액수를 계산하면 160억원에서 180억원 정도 되는 것 같다. 김영완이 150억원 돈세탁에 연루됐다는 보도가 나간 뒤 그때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과 만나서 ‘그게 그 돈인가 보다’며 무릎을 쳤다.”

―자주 만나는 사람은 누구였나.

“워낙 철두철미해 누구를 만나는지 잘 모른다. 한 가지 기억나는 건 K씨가 장관에서 퇴임한 지 2개월쯤 뒤에 평창동 빌라에서 권노갑씨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K씨가 당시 운전사들에게 금일봉을 두둑이 줘 운전사들 사이에서 화제가 돼 기억이 난다.”

―몇 년간 모셨으며 누구를 자주 만났는지 알 수 있지 않나.

“차안에서는 전화도 안하고 다른 사람과 같이 타는 경우도 없기 때문에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호텔에서 약속을 잡더라도 운전사들끼리 모여 얘기를 할까봐 다른데 가 있다가 전화하면 오라고 했다. 다른 운전사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소형 TV를 사주기도 했다. 어떤 때는 차를 세워 놓고 혼자서 걸어갔다 오기도 한다.”

―김 회장은 회사가 몇 개나 됐나.

“그것도 잘 모른다. 김영완은 무슨 비밀이 많은지 우리 소속이 계속 바뀌었다. 월급 통장에 찍힌 걸 보면 처음 들어갔을 때 하남테크에서 무슨 지엔씨로 바뀌었다가 하여튼 1, 2년 지나면 월급 주는 데가 바뀌었다. 사람은 그대로인데 상호만 바뀐 걸 보면 돈 세탁하듯이 ‘상호 세탁’도 한 것 같다.”

―골프는 누구하고 쳤나.

“누구하고 쳤는지는 모르고, 항상 가던 곳에만 갔다. 한성CC와 서울 근교의 미군부대 골프장을 주로 갔다. 토요일 일요일은 그게 일이었다.”

―재산이 얼마나 되나.

“김영완 우편물에는 전국 각지의 토지에 대한 세금고지서가 대부분이었다. 김 회장 집사 일을 하고 있는 O씨 말로는 국내 돌아가는 총 현금의 100분의 1이 김영완 돈이라고 했다. 김 회장이 타던 벤츠나 골프 칠 때 이용하던 스타크래프트(고속도로 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있어 골프 칠 때 이용했다고 함) 수납장에는 언제나 돈다발이 가득 차 있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건 없나.

“만화와 무협지를 좋아해 가끔씩 청계천(8가와 9가 사이)에 가서 두 박스씩 만화책을 사다 놓고 차에서 주로 봤다. 평창동 집 지하에는 만화책이 박스로 쌓여 있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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