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영어에 대한 절박함으로 불이 붙은 교육이민은 그동안 그렇게들 떠나더니 아직도 계속이다. 조기유학도 여전하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중1 재영이도 내년쯤 미국으로 유학 갈 거란다. 학교 공교육이 부실해져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서 차라리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게 덜 힘들 거라는 것이 재영 엄마 생각이다.
우리 집이 있는 서울 강동 지역도 이 정도인데, 강남의 대치동 도곡동에 사는 친구들은 그 동네선 한집 건너 한집이 다 부인과 애들을 외국에 보낸 기러기 아빠란다. 외로움에 지친 기러기 아빠가 자살하고 조기유학에 실패한 얘기도 심심찮게 들려오지만 떠나는 이들을 막진 못한다. 옛말에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고 했는데 남은 아이들은 ‘굽은 나무’짝인가.
어떻게든 공교육을 믿으려고 애써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되는 영어교육에 대비해 다른 아이들이 유치원 때부터 영어학원을 다녀도 지금 중1인 우리 큰 아이는 학교 교육을 통해 영어를 처음 접했다.
그런데 갈수록 믿음을 상실하게 된다. 초등학교 때는 시험을 안 보아야 인성이 좋아지는 것처럼 하더니, 중학교에 올라가 보니 국어 영어 수학 과학 같은 주요과목은 학교시험의 난이도가 낮아져 변별력이 떨어지고, 음악 미술 체육을 잘 해야 성적이 올라간다.
하지만 대입 수능은 주요과목 위주이다. 경쟁이 없어야 훌륭한 교육인 것처럼 하는 공교육은 난이도가 오락가락하는 대입 수능 앞에서 좌초되기 시작해 좁은 취업문 앞에선 더욱 초라해 보인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토익점수가 취업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가 되어 가는데 국내에서 죽어라 공부해 유명대학을 졸업해도 겨우 입만 떼는 영어로 해외파의 유창한 영어와 겨루어선 승부가 뻔하지 않나. 그저 영어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살다온 사람들에게서 외국학교 공교육이 더 알차더라는 얘기를 들으면 울화가 치밀 정도다.
그러잖아도 줄줄이 떠나고 남은 사람만 왠지 바보 같은데, 국내 우수기업 인사담당자들이 우수인재 확보를 위해 외국대학을 돌며 인재유치 설명회를 한다는 뉴스를 보면 절망감마저 든다.
외국으로 나간 많은 아이들, 그 아이들이 우리나라로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인재유출이어서 문제다. 반면 그 아이들이 국내에 들어와 ‘토종파’와 경쟁한다면 ‘글로벌화’를 부르짖는 기업 인사담당자들이 어느 쪽을 택할지 묻고 싶다. 몇 년 뒤면 우리 큰아이도 취업전선에 나설 텐데, 우리 집도 초가삼간 정리해 더 늦기 전에 나가봐야 할는지….
박경아 (서울 강동구 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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