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함께 일을 나간 부자는 땀을 흘리며 일하다 차례로 쓰러졌다. 순식간에 닥친 질식 때문이었다.
가난했지만 착했던 아들과 아버지의 죽음을 앞에 두고 주위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휴일이면 어김없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아버지를 도와온 고교생 아들은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구김 없이 자라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도 높았다.
17일 오후 2시경 서울 송파구 잠실동 4층 상가건물 지하실에서 소음방지 공사를 하던 신해균씨(47)와 아들 동현군(17)이 숨져 있는 것을 공사를 하청한 황모씨(26·회사원)가 공사현장에 들렀다가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에 따르면 신씨 부자는 이날 오전 9시반경 통풍이 되지 않는 지하실에서 공업용 본드로 스펀지를 벽에 붙이는 소음방지 공사를 하던 중 본드의 유독성 가스에 질식해 의식을 잃고 숨졌다.
신씨 부자는 이날 공사를 한시 바삐 마무리하기 위해 오전 8시경부터 현장에 나와 1시간여 동안 무리하게 작업을 하는 바람에 유독성 가스에 노출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아버지 신씨는 15년 전부터 설비업체를 운영하던 중 1998년 외환위기 직후 사업체가 부도가 나 가세가 기울면서 시장판과 공사판 등을 전전해야 했다. 부인 최은자씨(43)도 화장품 판매 등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
신씨는 생활고를 못 이겨 한때 자살도 생각해 봤지만 어려운 형편에서도 구김 없이 자라나는 딸(20)과 아들을 생각하며 참아왔다는 것. 그러던 중 신씨는 젊을 때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손재주를 살려 약 2년 전부터는 방음공사 하청 일을 해왔다.
신씨는 막걸리 한잔 마시는 것도 아끼면서 돈을 모으고 은행 대출을 받아 최근 단칸방에서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20평 남짓한 다세대주택으로 옮길 수 있었다.
이런 아버지를 보며 동현군(M정보고교 자동차과 2년)은 휴일이면 한마디 불평도 없이 공사현장에 따라 나서곤 했다. 동현군은 최근 가정환경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대학에서 치기공을 전공하려는 꿈을 갖고 진학반에 들어가 평일에는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해 왔다. 그래서 아버지가 공부에 전념하라며 동현군을 말리기도 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아버지를 도우면서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다고 말해 왔다.
어머니 최씨는 18일 오후 빈소가 차려진 강남시립병원 장례식장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남편과 함께 참변을 당한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신씨 부자의 영정과 국화꽃 몇 송이만 놓여 썰렁해 보이는 빈소에는 신씨 유족 몇 명과 검정 교복을 입은 동현군의 친구 20여명이 모여 비명에 간 이들 부자를 애도하고 있었다.
동현군의 담임 권의택 교사(45)는 “동현군은 목표 의식이 뚜렷하고 성실했다”며 “가정형편이 어느 정도 회복돼 이제 공부에 전념하려던 시기였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동현군의 한 급우는 “동현이가 대인관계도 좋아서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며 “그가 죽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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