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부여박물관이 백제권에서 출토된 도량기 80여점을 통해 이 같은 궁금증을 풀어줄 ‘백제의 도량형’ 특별전을 연다.
고대 도량형을 주제로 한 전시회는 이번이 처음. 27일부터 9월 21일까지(월요일 휴관) 박물관 내 역사실에서 열린다. 백제는 중국의 도량형을 발 빠르게 받아들여 각종 건축물과 장식품을 제작하며 국력을 키웠다.
▽척도제(尺度制·길이)=웅진시대 초기에서 사비 전기까지 1척의 길이가 25cm 내외인 중국 남북조시대 자(尺)가, 사비 후기에는 부여 쌍북리 자처럼 29.5cm 내외의 당척(唐尺)이 사용됐다. 남북조시대 척은 금동대향로와 창왕명석조사리감 등을, 당척은 부여 외리 출토 무늬벽돌 등을 만드는데 적용됐다.
백제의 당척 수용은 중국의 당척제 시행시점(620년대)과 거의 같을 정도로 빨라 신라(문무왕 5년·665) 보다 크게 앞섰다.
▽양제(量制·부피)=부여 쌍북리에서 발견된 목제 사각용기와 부여 화지산 출토 석제 용기는 각각 1말과 5되 용적의 양기로 당시의 양제가 비교적 세분화됐음을 보여준다. 다만 1말의 경우 6리터로 지금(18리터)과는 다르다.
또 쌍북리 목제 사각용기의 경우 한 변의 길이가 당척 1자(29.5∼29.7cm) 길이와 거의 같아 척도(尺度)와 양기(量器)를 겸하고 있다. 이는 백제의 도량형이 높은 수준이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형제(衡制·무게)=금형의 일종으로 보이는 일근새김거푸집(一斤銘鎔范)과 각종 화폐, 무령왕릉 출토 은팔찌 등에서 근(斤)이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공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다리작새김은팔찌(多利作'銘銀釧)에는 230주(主)라는 무게 표시가 나오는데 이는 중국의 무게단위인 수(銖)를 백제언어인 주로 바꾼 것이다. 백제가 중국의 도량형제를 능동적으로 수용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부여=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