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 장애인 정모씨(50)가 살아온 ‘쪽방’은 들어서는 순간 땀 냄새와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정씨는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1동 일명 ‘쪽방골목’에 있는 이 한 평짜리 쪽방에서 5년 이상 살아왔다. 2층짜리 이 무허가 건물에 있는 쪽방은 모두 8개. 그러나 2층의 쪽방 3개는 천장이 150cm도 안돼 입주한 사람조차 없었다.
복도의 너비는 어깨 폭 정도로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 환기는 물론 방음조차 되지 않아 앞방과 옆방의 쿨럭거리는 소리까지 다 들린다. 이 건물에는 화장실이나 욕실이 없고 공동 수도만 하나 있다. 대변을 보려면 50여m 떨어진 공중화장실에 가야 한다. 방에 계란 껍데기나 빈 술병 등 음식쓰레기가 방치되다 보니 온통 바퀴벌레다. 이 지역을 담당하는 한 경찰은 “솔직히 개집만도 못하다”고 말했다.
이 쪽방에서 28일 오후 7시경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정씨의 앞방에 살던 권모씨(36)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정씨를 과도로 마구 찔러 숨지게 한 것. 살해 이유는 단순했다. “정씨가 매일 술을 마시고 주정을 부려 시끄러웠다”는 것이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쪽방 수는 종로구 돈의동 등 8개 지역 4260실, 영등포역 주변에는 758실(600∼700명 거주 추정)이 몰려 있다. 하루 방값은 5000∼7000원.
영등포1동 ‘쪽방골목’을 담당하는 영등포경찰서 역전파출소의 강인호 경장(38)은 “노숙자끼리 치고받는 폭행 사건이 하루에 3∼4건 정도 들어온다”며 “무더운 날씨로 신경이 날카로워지면서 노숙자끼리의 폭력사건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에서 쪽방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최동귀(崔東貴) 사회복지사는 “쪽방에 사는 노숙자들은 대부분 일용직 공사잡부로 일해 생활하고 있다”며 “사건이 일어난 28일은 최근 자주 내린 비로 인근 인력시장에 일감이 많이 떨어진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최 복지사는 또 “경기가 안 좋아진 탓인지 최근 들어 30대 노숙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29일 권씨에 대해 살인혐의로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