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소련 이산가족회 이두훈(李斗勳·65·대구 중구 태평로·사진) 회장은 “국민이 국적을 포기하겠다고 하는 데도 정부는 기껏 현행법상 국적 포기는 불가능하다는 냉정한 대답뿐”이라며 “지난 30년간 정부가 과연 나를 국민으로 여기는지 회의하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1970년 이산가족회를 만든 그는 이후 일본을 200여 차례 오가면서 강제 징용자 보상문제를 두고 법정싸움을 벌였다. 일제강점기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된 4만3000여명의 한을 풀어보겠다는 마음 하나로 일본 정부를 상대로 90여 차례나 재판하기도 했다.
“일본으로 갈 때마다 참 억울하고 답답했습니다. 태평양전쟁 전후 보상 문제는 우리 정부가 팔짱만 끼고 있을 사안이 아닙니다. 전후 보상 사죄 문제만 나오면 일본은 65년 한일협정을 들고 나오고 우리 정부는 당시 양국 정부 사이에서 오간 비밀문서를 감추고 있습니다. 사할린 강제 징용자들은 한일협정 당시 한국 국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일협정과는 직접 관계가 없어요.”
이 회장의 부친은 그가 3세 때인 41년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된 뒤 72년에 숨졌다. 이때부터 그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그는 “현재 생존한 사할린 동포 4000여명을 대신해 일본을 오가는 동안 마치 돛단배에 몸을 의지해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듯한 심정이었다”고 술회했다. 이 회장은 “이번에 태평양전쟁 피해자들이 국적을 포기하려는 것도 이들을 철저하게 외면한 한국 정부에 대한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말했다.
“피해 당사자들은 이제 대부분 70세 전후의 고령자가 되었어요. 당사자들이 한 명이라도 살아있을 때 증거를 만들고 관련법도 제정해야지요. 강제징용자도 그렇고 원폭피해자들도 모두 사정이 비슷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의 태도를 보면 ‘귀찮으니 빨리 죽었으면’ 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아무런 성과 없이 세월을 보내다 1세대들이 모두 죽고 나면 정부는 ‘증거가 없다’고 또 물러설 것 아닙니까.”
그는 4개월째 대구 신천동의 한 병원에서 투병 중이다. 인 그는 “사할린 강제징용자, 원폭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등 수많은 태평양전쟁 피해자와 가족 등이 58년째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며 “정부가 이런 현실에 눈을 감은 채 올해도 태연히 광복절 기념식을 하는 것을 어떻게 지켜보겠느냐”며 가슴을 쳤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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