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연명/국민연금 기금운용 정치色 빼야

  • 입력 2003년 8월 10일 18시 53분


국민연금기금이 100조원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17%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이다. 학계와 사회단체에서는 엄청난 규모에 이른 국민연금기금 운용의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국민적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비상설기구인 ‘국민연금기금 운용위원회’를 상설화하자는 주장을 제기해왔다. 다행히 보건복지부와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등 경제부처에서도 상설화의 필요성과 원칙에 합의했으나 기금운용위원회를 어느 부처가 관할할지, 즉 국민연금기금 운용을 어느 부처가 통제할 것인지를 놓고 상당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1998년까지는 재경부에서 국민연금기금을 통제해 왔는데 두 가지 부정적인 측면이 나타났다. 첫째는 정부가 국공채의 인수를 통해 연금기금을 차입하지 않고 환금성도 없는 ‘예수금 증서’라는 차용증을 써주고 수십조원의 연기금을 빌려가는 무리한 관행이 나타났다. 이 방식은 무수한 비판을 받아 결국 폐지됐지만 국민연금의 신뢰성에 상당한 상처를 남겼다. 두 번째는 국민연금기금을 단기적인 증시부양이나 경기부양 수단으로 무리하게 이용한 측면이다. 주가가 폭락하고 경기가 나빠지면 정치권이나 경제부처에서는 당연히 경기부양 수단으로 ‘무주공산’인 국민연금기금을 사용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실제 주식시장을 부양하는 단기 수단으로 연금기금이 사용되면서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불안과 불만도 높아져 갔다.

98년 국민연금법 개정 이후 그나마 작동하기 시작한 국민연금기금 운용위원회가 여러 한계를 드러내긴 했지만 국민연금을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으로 동원하는 기금운용의 ‘정치적 위험’을 방지하는 데는 상당한 공헌을 했다. 전문가들이 국민연금기금의 통제권을 경제부처로 이관하는 것에 우려를 표명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국민연금기금이 ‘정치적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너무 높고 이로 인해 국민연금 전체가 받을 상처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경제부처의 과도한 개입을 반대하는 것이 정부의 재정·금융정책과 기금운용이 더 유기적으로 연결될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관련법에 경제부처와의 기금운용협의를 정례화, 명문화하는 더 강력한 규정을 삽입하거나 경제부처 관련 직원들의 파견근무 등을 통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 지금도 기획예산처는 기금관리기본법에 의해 이러한 권한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다.

국민연금기금은 그 막대한 규모 때문에 이미 복지부의 업무 영역을 넘어섰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경제부처는 물론 복지부의 일반 행정에서도 독립한 국가행정기구로 기금운용위원회를 상설화하는 것이 ‘정치적 위험’을 방지하고 기금운용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가장 적절한 대안이 될 것이다. 기금운용이 경제정책과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연금제도와 연금 지급에 대한 궁극적 책임이 주어져 있는 복지부를 기금운용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복지부에서 기금운용위원회를 독립시키는 대신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추천권을 복지부장관에게 부여함으로써 최소한의 연계점을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다. 기금운용에서 ‘전문성’이 중요하나 기금운용의 ‘사회적 합의’라는 큰 원칙을 벗어나서는 안 되며 기금운용위원회에 가입자 대표의 참여를 축소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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