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제출할 개인기록카드를 작성하면서 딸아이가 내게 물었다.
‘아빠, 직업이 뭐예요?’
나는 ‘아빠는 지휘자’라고 했다. 그러자, 아이는 ‘지휘자는 직업란의 항목에 없다’며 난색을 표시했다.
결국 나는 구체적인 직업이 표시돼 있지 않은 ‘기타란’에 표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귀국한 대부분의 전문 연주자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대학교수 자리를 얻기 위해 발버둥친다.
전문 연주자로서 일정한 수입을 가질 수 없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들이 고정적인 수입원이 생기는 교수직을 선호하는 것을 탓할 수 없는 노릇이다.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연주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도 소중하다.
대구에서 합창단 지휘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필자는 얼마 전, 수도권에 있는 모 대학으로부터 전임교수자리를 제의받은 적이 있다.
좋은 기회였지만, 정중히 사양했다. 가장 큰 이유는,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되는 연주활동에 더 충실하기 위해서다.
주변에서는 내가 전임교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다며 안타까워 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획일적 가치 기준이 바뀔 수 없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수라는 직함이 있으면 더 많은 기득권을 누리고 사람의 능력과 상관없이 영향력 있는 기관에 소속돼야만 능력을 인정받는 풍토는 이제 변해야 한다.
전문성을 갖춘 수많은 ‘프리랜서’들이 최근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알게 모르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숨어 있는 ‘프로’들을 대접해 주는 풍토가 뿌리를 내리면 이들은 지금보다 가치 있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재눈 지휘자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