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밀라 유적은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남쪽, 해발 1600m 고원지대의 중심에 있는 대표적인 아슐리안 구석기 유적이다. 1950, 60년대 미국 팀에 의해 발굴조사가 진행됐던 유적이지만, 30년 동안 재조사는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지역은 여전히 동아프리카에서 대표적인 아슐리안 유적으로 꼽히고 있고, 탄자니아 정부에서도 올두바이 고르지와 함께 가장 중요한 국가보호유적으로 지정한 곳이다.
유독 이 유적을 고집하며 머나먼 아프리카로 향한 것은 이 지역에 흔하게 널려 있는 아슐리안 주먹도끼 때문이었다. 우리가 경기 연천 전곡리 유적을 발굴하며 국보처럼 여기던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강바닥에 깔려 있으니, 이곳은 ‘구석기 시대의 문명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한국팀이 발굴하기 시작한 지점은 이제 막 새로 침식이 시작돼 한 사람이 겨우 움직일 수 있는 골짜기의 입구였다. 이번 발굴에서는 유적의 연대를 새로이 측정할 수 있는 뼈 화석의 발견을 가장 큰 임무로 삼았다. 다른 어떤 지역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던 상당수의 뼈가 발견되었고 이 중에는 멧돼지, 하마, 악어, 새 등의 뼈들도 포함됐다.
그동안 동물 뼈가 거의 나오지 않아 발굴관계자들을 애태웠던 이시밀라 유적에서 이런 성과가 나오자 학문적으로 대단한 뉴스가 될 만했다. 함께 발굴한 탄자니아 고고학자가 “미국의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리키재단과 같은 곳에 고고학 발굴기금을 신청하자”고 제안했을 정도였다.
![]() |
이번 발굴은 대부분 지금까지 발굴한 것 중 가장 오래된 층을 대상으로 했다. 이 층에서는 아슐리안 주먹도끼보다 오래된 형태의 원시적 석기들이 동물화석과 함께 발굴됐다. 이시밀라 유적에는 전형적인 서구 아슐리안의 출현과정을 알 수 있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에 새로운 절대연대 측정치가 나오면 아프리카의 아슐리안 문화사도 새로이 정리되어야 할 것 같다. 곧 한국에 도착할 발굴품들이 정리되고, 채집된 여러 샘플들이 과학적으로 분석되면 인류문화 진화사의 새로운 해석이 나올지도 모른다.
배기동 한양대 문화재연구소장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