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서 협찬받고…연예인 불러 공연…어른 뺨치는 고교축제

  • 입력 2003년 9월 8일 18시 21분


《“끼약! 오빠∼.” 6일 오후 8시경 서울 강남의 A고등학교에서 벌어진 교내 가을축제. 운동장에 마련된 무대 위에 요즘 청소년 사이에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댄스 가수가 등장했다. 1000여명의 학생들은 가수의 격정적인 노래와 현란한 율동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한 손으로 높이 치켜든 야광 막대기는 파도처럼 흔들렸고 운동장은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이어지는 또 다른 인기 그룹의 노래, 그리고 마지막 순서인 불꽃놀이. 국가기관이나 민간단체의 큰 행사가 있을 때나 볼 수 있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5분여간 밤하늘을 수놓았다.》

지난달 말 서울 강남의 B고교.

이 학교 축제에는 최고 인기의 연예인들이 대거 출연하면서 학교 주변이 북새통을 이뤄 30명의 경찰이 동원되기도 했다. 궂은비에도 이웃 중고교생들까지 모두 2000여명이 모인 축제는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불꽃놀이가 벌어질 때는 관할 경찰서에 “무슨 난리가 났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이처럼 8월 말부터 최근까지 서울 강남의 일부 고교를 중심으로 초호화판 축제가 붐을 이루고 있다. 이는 이미 올 3월에 있었던 해당 학교들의 학생회장 선거에서 ‘공약’으로 등장해 어느 정도 예고된 일이었다.

충격적인 일은 일부 학교의 경우 학생회 간부들이 막대한 축제비용 충당을 위해 인근 사설학원 등을 대상으로 외부 ‘스폰서’를 모집했다는 것.

이들 학교는 공식적으로는 연예인들이 ‘우정출연’했기 때문에 큰 비용은 들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본보의 취재 결과 일부 학교는 학생회장단이 학교 주변에 있는 사설학원을 상대로 비용을 모금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달 30일 축제를 한 C고교의 경우 축제에 든 비용은 모두 2500만원. 학생회측은 이 가운데 1000만여원은 학교 지원금과 학생회비로 충당했으며, 나머지는 학생회장단이 근처 사설학원 등을 상대로 직접 스폰서를 구했다고 밝혔다. 학생회의 한 간부는 “이 중 600만원을 연예인 초청비용으로 지출했다”고 밝혔다.

A고교도 스폰서를 모집했다. 이 학교 학생회 관계자는 “학생회장단이 조를 짜 근처 학원 등을 돌며 25건의 스폰서를 구했다”며 “스폰서를 많이 확보하는 게 곧 학생회장의 능력으로 통한다”고 말했다.

반면, 전통적인 고교축제 행사인 미술전 등 각종 전시회나 연주회 등에 대한 학생회의 지원은 거의 없다시피 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들 행사에는 찾는 학생들도 적었다.

이에 대해 A고교의 한 교사는 “연예인 등을 초청하는 대형 행사가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풀고 젊음을 발산시키는 기회는 될 수 있겠지만 전시회 등 학생 본연의 자체행사를 무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시 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그런 얘기들을 전해 듣고 경위를 파악했으나 스폰서를 모집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학생회장에 당선되면 대학입시 전형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축제를 공약으로 내거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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