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온 방글라데시 출신 모하메드 알롬(29).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서울 등 수도권의 도자기공장과 가방공장 등을 전전하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하지만 남은 것은 불법체류자라는 딱지와 허리통증뿐.
3년 전부터 허리통증이 심해져 지금은 정해진 일자리 없이 경기 성남시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생활하며 일용직 근로자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하지만 끼니는 걸러도 매달 30만∼40만원을 고향에 부치는 일은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고향에 있는 가족이 7명입니다. 앞으로 1∼2년만 더 일하면 고향에서 작은 옷가게라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외국인 고용허가제 시행에 따라 신고하면 출국해야 하기 때문에 요즘은 걱정이 태산 같아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알롬씨는 추석 때 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마련한 추석잔치에 참석하고 고향 친구 10여명을 만나 꿈 많던 10대 시절 얘기를 하며 연휴를 보낼 계획이다.
불법체류 8년째인 베트남 출신 도평 투안(32)에게도 한가위는 쓸쓸한 날이다.
지난해 친구의 소개로 취업한 중소기업에서 360만원의 급여를 떼여 마음고생이 심했던 그는 요즘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부모와 조카들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고 했다.
“조카가 열한 살 때 한국에 왔는데 얼마 전 보내 온 사진을 보니 저보다 키가 10cm는 더 크겠더군요.”
그는 연휴기간 친구들과 인천 남구 주안동에 있는 베트남 음식점을 찾아 고향 음식을 즐길 생각이다. 그러나 언제 추방당할지 몰라 예전처럼 친구들과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기 힘들 것이란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착잡하다.
도평씨와 알롬씨처럼 4년 이상 된 불법체류자들은 추석 이후 지금처럼 계속 숨어 다니며 살지,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갈지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 추석이 더욱 쓸쓸하기만 하다.
도평씨는 “고향을 떠날 때 진 빚은 다 갚았지만 조금만 더 벌면 고향에 조그만 집을 살 수 있는데 안타깝다”며 “추석 때 부모에게 전화해 귀국문제를 상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 김해성(金海性) 대표는 “자진출국 기간이 끝나는 11월 15일 이후 정부의 단속이 강화될 것으로 보여 추석을 앞두고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 등 여러 단체들은 추석 연휴기간인 10∼12일 외국인 근로자들의 쓸쓸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은 10, 12일 중국동포와 외국인 근로자들을 초대해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에서 위로잔치를 열고, 경기 안산시의 외국인노동자센터는 10, 11일 안산시 단원구 원곡본동 ‘국경 없는 마을’에서 추석대잔치를 열 예정이다.
성남=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인천=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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