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매미' 남부 강타]만신창이 농어촌 "뭘 먹고 사나"

  • 입력 2003년 9월 13일 18시 32분


제주 서귀포시 하원동 1000여평의 단감용 비닐하우스 구조물이 휴지조각처럼 40여m나 밀려나 쓰러져 6000여만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한 농부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구겨진 구조물을 살펴보고 있다. -제주=전영한기자
제주 서귀포시 하원동 1000여평의 단감용 비닐하우스 구조물이 휴지조각처럼 40여m나 밀려나 쓰러져 6000여만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한 농부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구겨진 구조물을 살펴보고 있다. -제주=전영한기자
태풍 ‘매미’는 유난히 잦은 여름비와 적조 때문에 시름에 젖어 있던 농어민들에게 ‘결정타’를 가하고 지나갔다.

이 때문에 태풍 피해가 큰 경남북과 전남 지역의 농어촌에는 줄파산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흉년=“추석인데…. 논이고 밭이고 성한 데가 없어요.”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13일 오후. 최고의 쌀맛을 자랑하는 경북 의성 안계 들녘에는 물에 잠긴 농작물을 바라보는 농민들의 탄식으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안계평야에서 2만평에 논농사를 짓는 박창식(朴倉植·46)씨는 “물에 잠긴 벼는 물론이고 물이 빠지더라도 알이 여물지 않아 벼농사가 사상 유례없는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농민들은 자포자기 상태”라고 농촌 분위기를 전했다.

안계평야에서는 지난해 평균 150평의 논에서 9가마를 수확했으나 올해는 절반도 수확하기 어려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고추 참깨 같은 밭작물도 수확할 게 없을 정도로 망쳤다. 경북 북부지역 고추 주산지인 영양 청송 안동 등의 농가는 수년간 적자 농사를 지어왔는데 올해는 사정이 더욱 어려워졌다.

영양군 일월면에서 2500평의 고추농사를 짓는 박순선씨(66)는 “그렇지 않아도 날씨가 나빠 병충해와 습해로 농사를 망쳤는데 태풍으로 수확할 게 거의 없어졌다”며 한숨을 지었다.

경산 영천 등지의 배 사과 과수원에는 수확을 앞두고 떨어진 과일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영천시 고경면에서 배농사를 짓는 안홍석(安洪錫·55)씨는 “3300평 가운데 70%가량 피해를 봐 수확량이 사상 최저로 예상된다”며 “해마다 여름철에 피해는 있지만 올해가 최악”이라고 말했다.

▽폐허가 된 양식장=“적조로 물고기가 떼죽음한 지가 엊그제인데, 태풍마저 몰아쳐 양식장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13일 오전 전남 완도군 신지면 송곡마을 앞 가두리양식장.

전날 초속 20∼30m의 강풍이 몰아쳐 마을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 설치된 4200평의 가두리양식장 가운데 1200평의 양식장 시설물이 물속에 잠겼다. 부러진 나무와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이 여기저기 떠다녔고 양식장의 나머지 시설물도 온전한 것이 거의 없었다.

이 마을 이장 정태전씨(63)는 “시설물이 파손되면서 돌돔과 우럭 등 줄잡아 120만마리가 바다로 빠져 나간 것 같다”며 “이달 초 적조로 60여만마리가 죽었는데, 태풍이 양식장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올 바다농사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게 됐다”고 말했다.

완도군은 13일 현재 금일읍, 금당·신지면 등에서 59어가 215ha의 가두리양식장 가운데 60∼70%의 시설물이 파손되는 피해가 난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완도군은 유해성 적조로 12일까지 678만마리의 양식 물고기가 죽어 168억원의 피해가 났었다.

북상하는 태풍의 왼쪽에 놓였던 전남 여수시 소라면 복산마을의 경우 주민 60여명이 마을 앞 해상에 설치한 새꼬막양식장 100여ha의 지주목이 뽑히고 그물이 파도에 휩쓸려가면서 양식장이 아예 자취를 감췄다.

이 마을 김세규씨(60)는 “지난달 말 적조로 출하를 앞둔 새꼬막 20여t이 썩었는데 이번에는 태풍으로 시설물이 사라져 종패마저 뿌릴 수 없게 됐다”며 “지난해 태풍 ‘루사’때도 큰 피해를 보았는데 이젠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남에서도 사천을 중심으로 한 통영 거제 일대의 어류 및 굴 양식시설이 대부분 파손됐다.

의성=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완도=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사망·실종자 명단(13일 밤 12시 현재)▼

■경남

▽사망(35명) △정학남(80·여) △김귀인(81·여) △김만규(59) △최혜지(10·여) △우창수(46) △조봉안(70) △조굴이(86·여) △황덕임(85·여) △주성추(73) △조용봉(74) △이조임(89·여) △이경섭(58) △이서천(23·여) △주정순(52·여) △이서운(82·여) △우판암(70) △엄재용(71) △김춘현(59·여) △신현숙(63·여) △정금조(53) △김관행(39) △서용봉(44) △이기원(66) △김명순(64·여) △임월순(66·여) △마보퉁(38·중국 산업연수생) △정일곤(48) △조현국(57) △김광임(35) △문정환(25) △허재춘(36) △문봉진(20) △서영은(23) △성명 미상(40대 중반·여) △성명 미상(30대·여) ▽실종(17명) △김봉기(82) △전은연(71·여) △설금조(79) △김대봉(64) △윤주인(67) △하말자(63·여) △최기순(73·여) △엄기섭(36) △우미자(33·여) △박이동(68) △김화순(63·여) △정양기(54) △김은아(87·여) △오문관(62) △문태환(43) △성명 미상 2명

■대구경북

▽사망(12명) △곽남순(65·여) △박종하(48) △서호순(37) △조숙영(62·여) △장은우(11) △최득노(34) △이난희(49·여) △조명제(60) △김안국(77) △황봉조(76) △신원 미상 2명 ▽실종(8명) △방동규(43) △방주환(15) △정옥연(83) △성영란(58·여) △최준호(38) △정선일(23) △이동기(21) △조성인(20)

■강원

▽사망(7명) △이재현(68·여) △권재천(93·여) △백경도(77) △백자옥(17·여) △하달년(74·여) △권대명(98·여) △정화자(62·여) ▽실종(1명) △신원 미상

■광주전남

▽사망(9명) △최정호(43·여) △김승대(7) △김은진(5·여) △박안심(72·여) △박기선(58) △송향례(81·여) △이기중(56) △이영운(52) △정병호(48) ▽실종(1명) △정철호(52)

■부산

▽사망(7명) △서용석(43) △한미웅(61) △한재식(50) △김미숙(46·여) △황성광(38) △현성술(90) △이분선(38) ▽실종(6명) △김진식(55) △고광태(43) △이용군(51) △김봉식(68) △윤효도(57) △신원 미상

■제주

▽사망(2명) △김명국(58) △안옥수(73·여)

■전북

▽실종 △최정자(59·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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