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별 능력 평가에 따른 연봉제 도입과 서열 파괴는 구조조정의 필요성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좀 다른 차원에서 인사 태풍이 사방에서 예고되는 가운데 파격적 세대교체와 정년 앞당기기가 고위 공직을 포함한 사회 전 영역에서 대세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반개혁’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사회 모든 영역 조기퇴출 바람 ▼
어느 분야에서든 인사 적체가 심하고 디지털 세대 고학력 젊은이들의 실업률이 우려할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으니 기수 파괴나 정년 단축은 일견 타당성이 높은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의 장래를 위해 무조건 바람직한 것인가. 우선 인력 수급의 통계적 측면에서 보자. 지금 우리의 평균수명은 70세가 훨씬 넘었는데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아 사회의 고령화 추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게다가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됨에 따라 개인당 노동시간도 줄어든다. 80세가 넘어서까지 살 사람들이 50대부터 일손을 놓는다면 누가 어떻게 일을 해서 국민을 먹여 살릴 것인가.
인력의 질적 관리와 효율적 활용을 통해 국가의 생산력을 극대화한다는 관점에서 상황을 볼 필요가 있다. 생산성이 최고에 도달하는 나이는 직능별로 조금씩 다르다.
천부적 재질과 조기 훈련, 그리고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특수 분야에서는 젊은 천재들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행정이나 사법 분야같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에 기초한 복합적 판단력이 요청되는 영역에서는 숙련과 경륜에서 나오는 지혜와 권위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개인별 역량에도 또한 큰 편차가 있다. 30대에도 장관직을 수행해 낼 탁월한 능력과 도덕성을 갖춘 사람, 80세가 넘도록 깨끗한 몸가짐과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이는 40세도 되기 전에 나태와 무능에 권위의식만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어느 분야에서나 고위직에 이를수록 병목 현상이 일어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옥석이 가려지는 가운데 세대교체가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자타가 공인하는 인재라면 나이에 상관없이 중용하는 것이 생산성 제고라는 견지에서 바람직하다. 선진국에서는 총리를 지낸 사람이 총영사로 나가기도 하도 교장이 평교사로 돌아오기도 하는 등 일률적인 정년 개념이 차츰 없어지는 추세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평균수명이 길어지는 것과 역비례로 정년이 앞당겨지고 갑작스러운 기수 건너뛰기가 주장되는 것은 그동안 자타가 공인하는 객관적 능력평가에 따른 엄정한 인사관리와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가 부진한 데서 오는 반작용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수와 연령을 갑작스럽게 건너뛰어 젊은 사람들로 자리를 채우기만 하면 부패와 비능률이 사라지고 개혁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지금과 같은 정치 풍토에서 ‘참신’하다 함은 일반적으로 부패의 유혹을 받아 볼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의미할 뿐 능력이나 도덕적 책임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힘을 쓸 수 있는 자리를 거치면서도 부정과 타협하지 않으려 노력했으며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업적을 남긴 사람만이 남보다 더 큰소리를 할 수 있다.
▼세대별 공헌도-생산성 인정해야 ▼
현대사의 급물살을 헤쳐 나오는 가운데 각 세대는 서로 다른 긴박한 과제를 안고 있었고 나름대로 공헌했다. 광복 전후 세대에는 자주 국권 회복이, 그 다음에는 절대 가난 퇴치와 반공이, 그 다음에는 군사독재 극복과 민주화가 시대적 소명이었다. 앞선 이들의 노력과 희생의 성과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새 세대는 남북한간의 평화 공존과 통일의 꿈을 꿀 수 있다. 애국애족이나 사회정의와 도덕성에 대한 관심과 정열이 어떤 특정세대나 집단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역사적 감각의 결핍에서 오는 착각이요 오만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사오정’ ‘오륙도’라는 냉소 속에서 젊은이들을 이민 가도록 내모는 정년 앞당기기 추세에는 제동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인호 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전 주러시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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